마음 넓은 장래희망 부자
어느 날 아들 학교 보낼 준비에 바쁜 아침, 갑자기 아들이 물어봤다.
[아들] ‘나랑 엄마랑 학교 가면 아빠는 집에서 밥을 혼자 먹나?’
[나] '응. 그렇지. 왜?'
[아들] ‘혼자 먹으면 심심하니까 내 인형 친구들하고 같이 먹어~'
홀로 점심을 먹을 내가 갑자기 신경이 쓰였나 보다. (아들아... 사실 그때를 아빤 가장 사랑한단다)
학교에 돌아온 아들과 집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 잘 있었으면 좋겠다.' 파랑이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공부 중인 날이었다. 함께 하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묻어나는 한 마디였다.
이런 아들의 말을 들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한 대 크게 맞은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는 것, 그리고 느껴본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아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지금은 아빠 엄마로 시작하지만 앞으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이런 넓은 마음의 아들을 보며 옆에서 많이 배워야겠다.
넓은 마음 덕분인지 아들은 커서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 어느 날은 차 뒷좌석에서 장래희망을 줄줄이 들려줬다.
'나는 커서 이런 것들을 할 거야~ 다이버(잠수부), 경찰관, 요리사, 과학자, 해양과학자, 달리기 선수, 건축가, 음악가, 미술가'
직업과 취미가 섞여있긴 했지만 아들의 흥미와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이 적절하게 섞여있었다. 사실 '장래희망'이라고 판에 박힌 내가 이름 붙인 것뿐이지 아들의 표현은 '커서 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아직 많이 이르지만 그래도 마음이 좋았다. 그 이유와 답이 정해져있는 안타까운 꿈인 '건물주, 공무원'이 아들에게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게 무엇이든지, 얼마나 바뀌든지 상관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런 시작을 하게 해 준 이곳에 감사하고, 그렇게 커가는 아들에게 감사하다.
아들은 본격적인 둘째 주를 잘 마치고 셋째 주 월요일까지 잘 다녀왔다. 중간중간 울음으로 등교를 시작하긴 했지만 마치고 나서는 늘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점점 웃는 횟수가 우는 그것을 압도할 것을 믿는다.
1. 오늘의 도움 학생!
아들 픽업을 위해 교실 밖에서 하교 종이 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 치고 나서 아들이 내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내가 도움 학생이었거든! 그래서 우리가 기르는 닭의 알을 가지러 가야 해!'
그날의 도움 학생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그날이 아들이 당번이었고 그래서 마지막 할 일이 달걀을 가져오는 일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마치기 전에 하는데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못했다고 한다. 닭이 자라는 가든을 가면서 내게 조잘조잘 설명을 해주었다. 작은 달걀을 무사히 집어 들고 선생님의 배려로 기념촬영도 마쳤다. 제 몫을 해주고 있는 멋진 아들이었다.
2. 새로운 친구 등장
하굣길에 처음 보는 친구가 아들에게 반갑게 인사해줬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아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반 친구라고 했다. 그동안 작년 친구들하고만 놀았는데 새롭게 알게 된 친구하고 한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별명이 '리자드 킹(도마뱀 왕)'이라고 한다. 뭐... 별 일은 아니겠지 ^^;;
3. 잭과 콩나무
아들이 학교에서 콩을 두 번이나 받아왔다. 친구가 준 콩이라는데 그 출처가 신기했다. 잭과 콩나무 이야기에 나오는 잭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서 꺼내 줬다고 한다. 잘 자라면 하늘까지 갈 수 있으니 잘 키워보자고 집에서 물을 주고 기다리고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4. 첫 숙제
1학년에 되어 생긴 숙제. 2주마다 나온다고 한다. 첫 숙제는... '가족들과 산책을 나가서 행복한 것, 즐거운 것, 감사한 것 등등을 찾아보세요'였다. 아들은 이 숙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명쾌하게 재해석했다.
'산과 바다로 탐험을 떠나자!' 그래서 우리 세 가족은 모험을 다녀왔다.
1. 일부러 못한 수영
이곳 호주에서는 수영이 필수다. 아들도 엄청 흥미를 가지진 않지만 필요한 것을 알기에 매주 배우고 있다. 지금 레벨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다음 레벨로 올라갈 만하다고 생각 중이시다. 그런데 이번 등급업 심사 때도 올라가지 못했다.
나중에 아들이 진실을 말했다.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해서. 반이 올라갈까 봐 일부러 못했어 ㅎㅎㅎ.' 새로운 반에 올라갈 어색함과 지금처럼 하프 레인이 아닌 풀 레인을 사용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한 결과였다. 아들의 이 모든 것을 존중한다.
2. 아들의 취미 생활
요즘 빠져있는 것은 피아노와 게임, 그리고 속담 만화다. 피아노 어플로 매일 연습 중인데 실력이 쑥쑥 늘고 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퍼즐 게임을 파랑과 신나게 하고 있다. 현질을 하는 순간 지울 예정이다. 자기 전에 혼자 깔깔대며 웃는 속담 만화책을 즐긴다. 다른 시리즈 책들도 마련해줘야겠다.
3. 마지막 예방 접종
한국에서 거의 다 맞고 왔고 딱 한 가지를 못 맞은 상태다. 호주도 우리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확인해보니 '뇌수막염 예방접종'만 맞으면 끝나는 상태였다. 호주의 놀라운 의료 시스템과 영어 속에서 파랑이 애를 써서 결국 어제 맞았다.
아들은 두려운 상황 속에서 기적적으로 기억을 끄집어내어 제안했다. '나 아가 때처럼 장난감 사주나? ㅎㅎ' 아주 아주 어릴 적엔 그렇게 달래서 장난감을 사주었었다. 이번에는 킨더 조이(작은 장난감이 들어있는 초콜릿)로 딜을 마쳤다. 눈물 한 방울 없이 마지막 예방접종을 맞았다. 다 컸네 다 컸어!
이렇게 아들의 학교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일들이 참 많다. 아들도 모두 처음이지만 우리도 그렇다. 누군가의 새로운 모험을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내 역할도 분명히 있다는 것은 많이 흥미롭고 신나는 여정이다.
오늘은 '선생님과의 만남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아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가 많이 된다.
흥분했을 때 나오는 아들의 단골 멘트가 떠오른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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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