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작년 이맘 때는 4.15 총선이 있었고 올해에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모두 상당한 투표율을 보이며 국민들이 각자의 의견을 펼치며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게 정치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그리 가깝지 않은 영역이다.
1.
어릴 적 고향인 충청도에 살면서 투표를 마친 직후의 명절날에 모이면 친척 어르신분들이 서로 누구에게 투표를 했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기억난다. 비밀투표고 뭐고 후보 이름이 마구 나오는 통에 들으면서 당황했던 추억이 있다. 다행이었던 것은 서로 크게 의견이 어긋나거나 누군가 강력한 입장을 표하지 않으셔서 그런지 크게 의견 대립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
신혼 초 막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쪽에 치우친 책들을 마구 읽어대며 마치 그것이 내 생각인 양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파랑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정확히는 설득하고) 싶었다. 우연히 정치적인 이야기가 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난 주워들은 이야기를 얼기설기 엮어서 내 의견이 완벽한 양 말을 지어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파랑이 한마디 했다. ‘네가 처한 입장과 지금 하는 주장은 앞뒤가 많이 맞지 않아’ 한마디로 기득권에 가까운 상황이면서 엄청난 진보주의자처럼 내가 속하지도 않은 그들을 대표해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어색했던 것이다. 한 방 맞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3.
국정농단의 주인공께서 후보에 나왔던 대선 직전이었다. 처갓집에 우리 부부, 처형네 부부가 방문하여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젊은 부부끼리 생각이 통해 누구를 뽑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다가 듣고 계시던 장인어른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는데...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다른 누구를 왜 뽑아야 하는지 본인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 이후 가족 식탁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정치’적인 입장도 뚜렷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의견도 정확히 바로 서지 않은 상태였다. 민감할 수 있는 ‘정치’ 이야기를 편하게 주고받거나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지지 못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분명 자랑은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이 많이 조심스럽다.
아무리 정치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말. ‘진보와 보수' 이건 도대체 무슨 말 일까? 말의 의미야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되겠지만 명확하게 ‘이게 이것이다’ 말해 줄 수 있을까?
진보는 바꾸어야만 하는 옳지 않은 지금을 고쳐나가며 나아가는 존재이고, 보수는 바꾸지 말아야 하는 옳은 것을 지켜나가는 존재인가? 만약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가 힘을 합쳐서 옳은 것은 유지하고, 옳지 않은 것은 바꿔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거의 없고 서로 다투고 깎아내고 발목 잡고 아주 난리 통이다. 그렇다면 결국 어느 한쪽이 옳을 수밖에 없기에 다른 한쪽이 부정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말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한치의 정치적인 이해와 입장 정리 없이 나날을 보내던 중 이 책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앞서 ‘처갓집 정치 이야기’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처형의 남편분(내겐 형님)께서 보내주셨다.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좋은 책이라고 하셨다.
한번 내게 온 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읽는 나였기에 선물까지 받은 이 책은 우선순위 넘버원이 되어 내게 바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ighteous Mind’인데 Righteous는 ‘(도덕적으로) 옳은’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옳다’와 ‘바르다’는 그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이 말들을 부정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옳지 않다’는 말에는 강한 거부감이 들면서 정의롭지 못해서 응징을 당해야만 할 것 같다.
- ‘바르지 않다’는 말에는 나쁜 감정보다는 그냥 좀 모자란 느낌이 들어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제목을 ‘옳은 마음’으로 할지 고민 끝에 ‘바른 마음’으로 한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우리가 가질 ‘바른 마음’이란 무언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자 노력한다. 그전에 먼저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음을 밝혀야겠다.
왜냐하면 우선 그 양이 꽤 많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이기에 원어의 모든 의미와 뉘앙스를 전하기에는 종종 한계에 부딪힘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를 전하는 식이 아닌 사실상 논문에 가까운 글이어서 이런 형식과 친하지 않다면 완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형식과 친하지 않지만 ‘완주’와 친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보물창고와 같이 놀라운 실험 결과, 생각, 의견 등이 가득 차 있다. 쉽지 않은 만큼 그 가치는 아주 큰 정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한 권으로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도덕성의 수용 영역이 내 생각과 달랐음을 깨닫고 놀랐다. 당연히 진보가 더 많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보수에 표를 던지고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참고로 저자는 진보주의자에서 보수주의자로 변했고 책에는 그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도덕성에 근거하여 설명을 해주는 방식이 매우 참신했다. 정치적인 입장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와 같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나 관심을 가지고 싶은 경우. 그리고 보수, 진보에 대해 이해하길 원하고 왜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견을 나눌 때 감정이 앞서고 어려워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내 추천의 의미를 뒷받침해 줄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어 남겨 둔다.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마음을 바꾸고 싶을 때 자신의 직관에 어긋나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그들은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것이다. 내 논거나 결론에 어디 미심쩍은 부분이 없나 이유를 찾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거의 백이면 백 그 노력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정치'라는 말은 여전히 피하고 싶고 더 나아가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난 정치에 관심 없어. 맨날 난장판이잖아. 보고 있으면 열만 받지.'라는 말이 어쩐지 이성적이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부족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국가라는 제도 하에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대표할 정치가가 꼭 필요하다. 그들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귀찮고 불편하다고 피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내 목을 향할 수도 있는 칼자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에게나 던져주는 것과 같다. 진보든 보수든 앞으로도 서로 다른 세력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들을 건전한 경쟁으로 이끄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다. 그리고 이 관심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각각의 입장에서 옳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를 판단하기 시작하면 다름이 틀림이 되고 옳음이 나쁨이 되기 쉽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바른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꼭 ‘바른 마음’을 가져보자.
<바른 마음> (조너선 화이트/웅진지식하우스) - 2017 완독
다소 책의 분량이 많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논문 형식으로 저자의 탄탄한 논리로 끝까지 잘 끌고 가기 때문에 막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도덕'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왜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직관이 추론보다 앞선다는 것에 100% 동의한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다고 이해하면 되는데, 정말 맞다. 우리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감정과 직관이 이를 좌지우지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오는 생각 1, 생각 2와의 관계와 동일하다)
(처음 알게 된 사실) 그리고 도덕에 대한 영역이 다양하고, 이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수용 영역과 그 주요도가 다르다는 것은 매우 신선했다. 저자가 진보주의자에서 보수수의자로 변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왜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이 승리하기 쉬운지 이해하였다.
종교가 집단을 더 잘 뭉치게 하고 살아남게 하는데 유리하도록 한다는 것에 고객을 끄덕이게 하였고(나는 그것이 믿음을 가장한 구속 같아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렇게 보니 종교인/종교집단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개인을 비롯하여 우리가 속한 집단은 서로가 다르다. 이런 다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름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겠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는 '다름이 틀림은 아니다'라는 도덕 시간의 내용을 어른이 되어서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내 감정을 조절하기 여전히 어렵다.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으로도 알 게 되었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는 나의 노력에 의할 것이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보수와 진보의 탄생)> (유벌 레빈/에코리브르) (주의 사항 : 다 읽기 어려움)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