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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20. 2021

행복은 그저 인생을 거들뿐

<행복의 기원>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파랑새’를 쫓는다.


‘꼭 성공해서 행복해지고 말 거야!’

‘내 꿈을 이루어서 행복해지겠어!’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 삶을 살겠어!'


이 ‘파랑새’와 같은 이상적인 삶에는 ‘행복’이 목적이 되곤 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늘 조건이 붙는다. ‘이렇게만 되면’, ‘이것만 이루면’, ‘이것을 가지면’, 등등... 그리고 이 ‘조건’을 갖추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포기하며 ‘행복’ 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중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담보로 살아간다는 것이? 뭐 물론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나중의 아주아주 커다란 행복을 위해 그전까지의 별것 아닌 작은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자, 그렇다면 어렵게 그 꿈을 이루고 나면 어떨까? 그 이후의 삶은 정말 행복이 계속 넘쳐나는 삶 일까? 모두 바라는 그 ‘조건’들을 갖춘 사람들이 불행과 절망에 빠져 ‘행복’ 하지 않은 삶을 살거나 그 삶을 초라하게 마친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어떻게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그런 굉장한 꿈을 이루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그런 내가 요즘 매우 행복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한 기분, 행복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주 느낀다. 난 이상한 걸까? 그 어떤 엄청난 행복의 조건을 이루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한 때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인데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말한다. 아마도 내가 하루에도 여러 번씩 접하는 그 기분 좋은 느낌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자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것이다.


그런데 ‘작은 행복,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처럼 행복에도 그 정도와 크기의 차이가 있는 걸까? 정말 어떤 행복은 더 크고 어떤 행복은 더 작을까?


우습게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는데 우린 이 ‘행복’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계속 수많은 지식과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러면 행복하고, 저래서 불행하다. 도대체 뭐가 진실일까? 무슨 이야기를 들어야 우리 인생이 좀 더 행복해 질까?






살면서 생긴 행복에 대한 막연한 의문들을 풀기 위해 오래 헤매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루고 나면 그 이후에는 계속 행복할까?’ ‘행복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까?' '행복이 꼭 필요할까?'


뭔가 모르겠으면 책부터 뒤지는 나에게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정말 명쾌하고 제대로 알려주는 ‘인생 책’을 찾았다! 이 책을 읽은 뒤 한동안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싸 들고 다니면서 추천을 했었다. 더 이상 ‘행복’에 관한 어떤 책도 읽지 않았다. 다른 책들은 필요가 없고,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문구, 문장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게 없다. 혹시 뭔가 엄청 두꺼운 책을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겨우 200페이지의 책이다. 그 당시 적어 놓은 수많은 인상 깊은 문구는 결국 책 전체 필사가 되었다. 또한 그 당시 감상평을 보면 ‘유레카’를 맛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내 행복한 호주 살기를 결심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원동력을 주었다.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3가지 내용을 내 마음대로 골라본다면!



1.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 행복한 것이다.'


모두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누군가는 행복하기 위해 인간의 삶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은 잘 살기 위해 ‘행복’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내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모두가 외치는 ‘행복하고 싶어요~’, ‘이것만 이루면 행복할 거예요~’에 대한 명확한 거부다. ‘행복’은 그렇게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열심히 살 테니, 예쁘게 잘 살 테니 지켜봐 주세요” 


이건 우리나라 ‘집단주의’에 비롯된 아주 잘못된 결혼식 청첩장 멘트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감이 스스로의 기쁨이 아닌 남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오늘 이 책 소개를 하면서 너무 많이 흥분을 한 나머지 더 이상 내가 덧붙일 말과 생각의 여유가 없다. (지금도 아주 행복하다) 그 당시 내가 꼽은 이 책 최고의 문장과 마지막 단락을 그대로 옮기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최고의 문장>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마지막 단락>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 장의 사진에는 두 사람이 웃으며 맛나 보이는 음식을 먹고 있다.)


그토록 찾아 헤맨 '파랑새'는 역시나 멀리 있지 않았다. 항상 우리와 같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미치도록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혹시라도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한 줄로 요약한다.


‘함께 해서 기분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자주 먹자.’ 그러면 자주 행복해질 것이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행복의 기원’ (서은국) - 2017 완독


그동안 수없이 나왔던 ‘행복’ 관련 책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없다. 설득력이 높다. 한 편의 아주 잘 써진 에세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좋은 책이다. 저자의 능력인 것 같다. (분명 강의도 훌륭할 것이다)


행복이 그냥 이상적인 것이 아닌, 살기 위해 생겨난 수단과 같은 것이라는 이론은 (아마도 상식적이지 않으므로) 모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 일 것이다. 우리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 행복한 것이다. 소소한 즐거움이 지속되는 삶이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언가 큰 성취/목표만을 지향하며 ‘저것만 달성하면 난 행복할 거야'라고 하며 지금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무시하며 참고 달려 나가는 우리들(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한 방 먹여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실 어렴풋이 알면서도 (현재를 즐겨라~) 무언가 남과 다른 더 큰 성공(=행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모두 시달려 왔던 게 아닌가 싶다. 다 같이 행동하고 살아가지만 주변과 비교하느라 서로 피곤해지는 우리의 ‘집단주의'에서 자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활이다.


새로운 진리를 주는 책들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 집중하고, 기분이 좋은 인간관계를 하라, 비교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감사하고 즐겨라' 모두 맞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각각의 기쁨과 행복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몸에서 시시때때로 알려주는 그 ‘행복감’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게 필요하겠다. (뇌에서 보내주는 그 신호가 생존에 필요하다고 수만 년 간 축적해놓은 결과이다) 물론 절제는 필요하겠지만! 하하. (맨날 먹고 자고 할 수는 없으니)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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