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말’이 적지 않다, 아니 '말'이 많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고민하고 고생한 적은 많지만 하지 못한 ‘말' 때문에 그러한 적은 많지 않다.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한 적도 적지 않지만 생각을 ‘말'로 제대로 전하지 못해 곤란한 적은 훨씬 많다.
이런 것들이 내가 겪은 ‘말'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말을 아끼는 게 맞는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 ‘A~ 말을 말자’라는 생각이 자주 들면서 말을 해도 소용없을 때에는 말을 줄이는 게 나은 거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말을 하는 경우가 줄거나, 일부러 줄이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언제나 ‘말'을 하고 산다.
‘말'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완연한 온라인 시대라고 할지라도 글과 댓글로 말을 하고 산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서로 직접 나눈 대화보다도 인터넷상의 말들이 더욱 선명하다.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뉴스들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누군가는 ‘그 말 한마디’로 최고의 영웅이 되기도 하고 최악의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고,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음에도 그렇게 판단한다.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말 한마디’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또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듯 별 에너지 소비 없이 입만 벌리면 아주 쉽게 나오는 ‘우리의 말’이 늘 적나라하게 우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창 말하는 재미에 붙여서, 내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하지 않고 참는 것보다는 무조건 내 생각을 남에게 다 전하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혼 생활,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주춤거릴 때 즈음에 이 책을 우연히 만났다.
말에도 그 품격이 있으며 그 품격은 다름 아닌 말 하는 우리의 품격임을 조용하게 이야기해준다. 오래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 이를 전한다.
‘한자 품(品)은 입 구 자 세 개가 모여 이루어졌다. 말이 쌓여 한 시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말’에 대한 생각과 모두 반대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말은 줄여야 하고, 많이 들어야 하고, 말을 하게 되면 많이 생각한 뒤에 간결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의 내 생각인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말은 후회 없이 모두 해야 한다’와는 아주아주 거리가 멀었다. ‘말’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 ‘말’이 많고 화려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게 나와야 하고 너무 쓸데없이 많아도 안 된다고 전했다.
사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고민과 깨달음에 잠깐 빠졌다고, 그동안의 내 ‘말’ 생활이 단번에 바뀌진 못했다. 그래도 그 이후에는 말하기 전에 한 번씩 더 생각하면서 이게 꼭 필요한 말인지 안 해도 되는 말인지 고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가족, 친척, 지인, 직장동료 등 아주 많은 이들과 관계하다 보니 ‘말’할 기회가 많아서 그 생각이 유효하고 효과적인 적이 많았다. 지금 호주에서는 그럴 기회가 적어서 그런지 원래대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말'을 할 기회가 생기면 예전처럼 수도꼭지 틀면 나오듯이 말이 나온다. (영어로는 많이 어려우니까...) 이 책을 돌아본 참에 다시 내가 하는 ‘말의 품격’을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혹시 나만큼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당신의 소중한 ‘품격’을 위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말의 품격’ (이기주/황소북스) - 2017 완독
'말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진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말이 필요 없다. 많이 듣고 공감하고 반응하자. 할 말이 있을 때, 꼭 필요한 말인지, 알맞은 말인지 고민하고 입을 열자. 입을 열었으면 간결하게 사족 없이 말하자. 이는 매우 어렵다, 특히 나 같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내 품격을 위해 신경 써보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