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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01. 2021

아빠가 육아를 하면 왜 외로워지는 걸까?

육아빠와육안빠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를 아이가 생긴 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소문이 있다.


'워킹맘은 엄마들 커뮤니티에 안 껴준대.'


유치원을 보내고 학교를 보내면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임이 생기는 데 이때 일을 하는 엄마는 어울리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등원, 등교 후 다 같이 모여서 커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공통 관심사를 나누면서 친해지는데 일터로 달려 나가기 바쁜 워킹맘은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괜히 소외되고 따돌려지는 분위기가 우리 아이에게도 전해 질까 봐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는 우리 부부의 어머니들께서 모두 전업주부로서 우리를 돌보고 다른 엄마들과 교류했던 기억도 한 몫했다.


요즘도 분명히 이 '엄마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단단할 것이다. 엄마들만 모여있는 단체 대화방이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알짜 정보가 오고 갈 것이다. 아쉽지만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아빠는 없을 것이다. 육아를 함께하는 아빠들도 더러 있겠지만 그런 모임 속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는 그곳에 같은 엄마인 워킹맘도 끼기 어려운데 겨우 아빠 정도를 껴 줄리가 없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끈끈한 단결력은 접하기도 전에 와이프의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게 할 정도로 강력하게 다가왔다. 나 어릴 적에 따뜻했던 엄마와 친구 엄마들의 보살핌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각도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선생님인 지인으로부터 들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학생 부모님께 연락하는 일이 있을 때 아빠에게 하면 나오는 반응이 한결같다고 한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ㅡㅜ 애 엄마에게 연락해주세요.’


대놓고 이렇게 하진 않겠지만 빙빙 돌려서 결국 애에 대한 것은 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한단다. 심지어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도 무조건 그렇게 군다고 한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내 애가 아니라는 듯이,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엄마들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돌아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아이를 돌보는 보육, 교육 기관에서 우선적으로 엄마에게 연락을 취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비상 연락망에는 엄마 연락처가 등록될 것이다.


흥미롭지만 매우 당연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한 번은 프리랜서이신 남자 지인께서 아이 초등학교 입학 후 학부모회에 참석했는데 역시나 아빠는 본인 혼자 뿐이었다고 한다. 그 어색하고 낯선 광경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그런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특수한 설정으로서만 익숙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 들으면 내가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여전히 아이를 챙기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엄마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대가 변해 사회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졌음에도 이는 그대로다. 아빠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하는 천연기념물처럼 육아의 고유한 영역은 무너지지 않고 지켜지고 있다.






이런 무서운 소문을 듣고 자란 내가 지금은 아빠가 되어 주육아 담당자로서 지내고 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과 상황이 바뀐 지금 내게 반갑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뭐하는 분이세요? 요즘 뭐하고 지내요?'


새로 만난 사람이나,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는 지인과 나누는 당연한 인사다. 예전에야 명함을 건네며 '여기서 일해요'라고 하면 끝이었다. 사실 지금도 '집에서 애 봐요'라고 하면 끝이지만 그렇지 않다. 괜히 뒤에 말들이 붙는다.


육아휴직을 내면서 완전 당당하게 '난 육아하는 아빠야'라고 세상 떠벌리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애 본다'는 대답에 묻는 이의 이해 불가능한 눈빛과 태도에 혼자 움찔하고 말이 길어진다. 아직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있으며 휴직 중이라는 설명을 꼭 가져다 붙인다. 절대 나는 애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른 일이 있는데 잠시 이러는 것뿐이라는 식으로.


이젠 아주 묻지 않더라도 혹시라도 오해할 까 봐 돌아서는 사람에게도 굳이 불러 세워 이야기한다.






뭐가 그렇게 나는 어려운 걸까? 당당하게 육아한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내 진짜 속마음은 왜일까?


우선 스스로 무언가 떳떳하지 않다. 오로지 '육아'만 하는 내 모습에 당당하지 못하다. 딱 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더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압박을 느낀다. 애만 보는 내 인생을 이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느낌이다.


이 솔직하지 못한 감정은 부끄러움으로 연결된다. 또 이 부끄러움은 밝히기 어려워지면서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가끔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나만 혼자인 느낌, 때론 고독하기까지 하다.


이 외로움과 고독함은 어디서부터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저 나 혼자 눈치 보며 만들어낸 것일까? 그렇다면 난 누구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가라 앉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든다. 도대체 왜 아빠가 하는 육아에 당당하지 못하고 감추게 되는지 스스로 안타깝다. 내게서 답을 찾지 못하자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 때문이 아니라면 나를 둘러싼 이 사회의 분위기가 이런 내 부끄러움, 외로움, 고독한 마음을 길러냈다고 핑계 대고 싶어 진다.






육아는 엄마만의 당연한 몫이며 끼어들 수 없는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분위기. 아빠는 늘 보조 역할이며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분위기. 이 속에서 육아하는 아빠들은 외롭다. 전담으로 육아를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만 해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긴 내 자리가 아니구나'라고. 이럴지니 오롯이 육아를 맡은 아빠일 경우에는 더욱 설 자리가 없다.


이 외로움의 이유가 단순히 엄마들과 못 어울려서 그런 걸까? 난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아를 하든 안 하든 아빠들은 엄마들과 원래 안 어울렸다. 괜히 성으로 나누어서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린 어려서부터 학창 시절,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동성끼리 좀 더 편하게 친해지며 살아왔다. 같은 성별끼리 더 어울리기 좋은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아무리 육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빠가 엄마들 사이에 껴서 어울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한계 때문에 외로움은 해결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난 이 외로움은 결국 동성 집단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빠로서 육아하는 나를 품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아빠들이다. 하지만 기대고 이야기를 나눌 아빠들을 찾기도 만나기도 어렵다. 결국 동성 집단, 아빠들의 육아에 무관심한 분위기가 이 외로움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육아하지 않는 아빠들이 외로운 육아 하는 아빠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갑자기 가만히 있는 육아 노관심 아빠들을 데리고 와서 뜨끔 했겠지만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빠들을 편의상 두 그룹으로 나눠 보겠다. 육아하는 아빠(육아빠)육아 안 하는 아빠(육안빠). 육안빠는 육아빠가 불편하다. 물론 아직도 한복에 갓을 쓰고 육아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엄청난 분들은 불편하지도 않을 테지만.


내가 육안빠시절에는 주변의 전설로만 들려오는 육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랬다. 괜히 없는 이야기 만들어내는 거라고. 이런 건 다 엄마들이 만들어 낸 거라고. 아니면 어쩌다 있는 특이한 사람일 거라고.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잘하기 어려울 거라고. 여기서 '사회생활 잘하기 어렵다'라는 육안빠의 생각이 육아빠를 외롭게 만드는 원인이다.


육아빠의 괜히 남자 답지 못하게 여자들 일에 껄떡대는 모습이 보기가 싫다. 그들이 전하는 아이는 함께 키워야 하고 아이에게 아빠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피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는 집안일과 육아를 나누어서 함께 해야 한다는 둥, 아빠 육아휴직 계획이 어떻게 된다는 둥 하는 그 모든 왈가왈부를 외면하고 싶어 진다.


대부분의 육안빠는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극소수의 육아빠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따돌리기까지 한다. 그러니 소수에 불과한 육아빠는 말 그대로 사회생활에서 의지할 곳이 없다.






처음에 등장했던 '끈끈한 엄마들 커뮤니티'로 돌아가 보자. 그곳에서는 서로의 힘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할 수 있다. 그럴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단단해지며 서로 힘이 되어 준다.


육아하는 아빠들, 나를 포함한 육아빠들은 외로울 때 어디로 가면 될까? 누구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냥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밥 벌어먹고 살기 어렵다고 결국 아무 행동도 안 할 거면서 세상 탓, 남 탓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술자리 말고 말이다.


내가 지금 경험하는 아빠로서 육아를 하다 생기는 외로움은 어디에서 달랠 수 있을까?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모두 꽁꽁 숨어있는지 육아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맘 카페는 알아도 대드 카페는 못 들어봤다. 어디에 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들 사이에는 안 껴주고 아빠들은 관심이 없고 오히려 경계한다.


동성 집단이 편해서 편하게 육아를 함께하자고 밝히면 좋을 일이 없다. 기껏해야 돌아오는 것은 '육안빠'의 남자답지 못하다는 잔뜩 찌푸린 시선뿐이다. 이런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그나마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육아빠'들이 자라나기 어렵다.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하더라도 밖으로는 들킬까 봐 숨기 바쁘다. 괜히 드러내 봤자 힘을 얻기는커녕 힘들게 한 결정과 의지가 흔들릴까 봐 도망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우리 육아빠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육아하는 아빠가 외롭지 않아야 한다. 육아하는 아빠들이 아빠들의 무리에서 따로 톡 튀어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잘 어울리면 좋겠다. 아빠가 어디서든 당당하게 '저 육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에 돌아오는 대답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라져야 할 아빠 육아> 시즌 2


아빠 언저리의 남자들

아이만 태어나면 아빠가 되는 줄 알았지

육아라는 위대한 여정에 낙오되지 않는 방법

아이는 어떻게 다르게 커가는가?

고쳐 써야 하는 아빠

부부관계는 좋아질 수 있는가?

아빠를 부를 때와 아빠로 불릴 때의 차이

나는 평균 이상의 아빠일까?




<사라져야 할 아빠 육아> 시즌 1

이 이야기를 진짜 책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나를 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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