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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23. 2021

왜 털은 계속 자라야만 하는가?

면도의 아픔과 귀찮음

회사 다닐 때 아침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안 하면 스스로도 그리고 남들에게도 티가 팍팍 나는 위생, 청결의 척도 같은 행위였다. 바로 '면도'다. 학창 시절에는 언제 자라서 어른답게 면도를 멋지게 해보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안 하면 큰일 날 정도로 쑥쑥 자라는 모습이 무서울 지경이다. 그나마 전기면도기 덕분에 신속하게 정리가 되어 다행이지 수동 면도의 번거로움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관리가 필요한 부분은 얼굴 표면의 털이 전부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 있는 머리카락이 또 다른 대표주자이며 모른 척하고 싶지만 어느새 삐져나오는 코털도 빠지지 않고 튀어나온다. 한 번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다고 했더니 역시 자신의 직업이 최고라던 미용사의 대답에 고객을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우리에겐 지치지 않고 자라나는 것이 털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한 녀석으로 보이는 손톱, 발톱도 그들과 경쟁한다. 잠깐 한눈팔고 돌아보면 어느새 내 몸보다 더 길어져있는 것이 이 녀석들이다. 잘라내는 쾌감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귀찮음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런 원하지 않지만 계속 자라나는 신체 일부의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회사에 가지 않으며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호주에서의 지금 생활이다. 면도는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한다.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아마 어마어마했겠지) 이발은 두 달에 한 번 한다. (정말로 어쩔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할 때는 거의 반삭발 수준으로 자른다.) 손톱도 일주일에 한 번 기타 연주에 방해가 될 때마다 한다. (발톱은 할 때 생각나서 같이 한다.)


처음에는 정말 편했다. 매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면도가 그랬고 나머지도 그 간격이 넓어져서 좋았다. 그런데 이것도 일 년이 지나면서 금방 적응해버렸다. 이젠 이것도 귀찮고 번거로워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라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는 지경까지 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긴 시간을 보여주는 증거로 자주 이용하는 것이 있다. (특히 무인도) 바로 손 쓸 수 없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모습이다. 그런 인상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인물이 보낸 세상과의 긴 단절을 보여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덥수룩한 모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만약에 어느 순간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멈춘다면? 이런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극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말고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을까? 지금 내 귀차니즘으로는 너무너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머리카락도 그대로, 수염도 그대로, 손톱 발톱도 그대로. 그것들을 정리하고 꾸미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 쏟을 수 있다니!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나는 시간과 날짜가 흐르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중요 이벤트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거의 주중과 주말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주말을 대표하는 유일한 행위는 몸에 있는 털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일주일의 흐름을 그리고 한 달의 흐름을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이것들의 성장이 정말 멈춘다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척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이 '털의 자람'이다. 이를 막지 못하는 무능력자의 한을 더해 괜히 이렇게 생각해본다.


눈에 띄는 이것들의 변화는 시간을 보여주는 세상의 섭리라고.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해 주는 고마운 현상이라고. 눈에 보여야 믿는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주신 신의 선물이라고. 생명이 끝나고 나면 이것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테니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지금 가진 시간을 중요성을 잊지 말라고 주기적으로 깨우쳐주는 알림이라고.


지금까지 제모 시술은 아플까 봐 엄두는 못 내겠고, 면도는 하기 귀찮은 사람의 억지 자기 합리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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