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Aug 01. 2021

단 하나의 고집스러운 사실보다는 무한한 허구가 좋다

엄청난 작가들과의 단체 미팅

독서를 시작하던 시기에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뭐가 뭔지 몰라 무엇을 읽을지 헤매다가 남들이 많이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만 뒤적이기 일쑤였다. 그 책들은 일란성쌍둥이처럼 하나 같이 닮아 있었다.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았고 스스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인생을 정해진 시험 문제처럼 다루며 제시하는 공식으로 정답을 찾으라고 외쳤다. 신입 독서자는 어버버 하면서 그들의 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기 바빴다. 열심히 흉내 내보려 했지만 그게 내게 맞는지 따져볼 경황이 없었다. 요가 수업 참가자처럼 잘 따라 하고 있는지 내 자세를 봐주기만을 막연히 바랐다.


이렇게 목적과 판단 없이 몇 해를 읽어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책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읽지 않아도 될 책과 읽고 싶은 책으로 나뉘었다. 그동안 읽어댔던 '법칙, 이론'을 박아둔 자기 계발서, 재테크 분야에서 등을 돌렸다. 질리도록 읽은 탓인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쏟았던 내 시간과 정성이 아까울 뿐이었다. 문제는 헤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책을 제외하고 나면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정확히는 쉽게 읽을 책을 찾았었던 베스트셀러 섹션에 남아있는 책이 없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전혀 다른 세계를 찾아 향했다. 그렇게 소설을 집어 들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외에는 아예 책을 읽지 않았다. 남들 한 번씩 읽는다는 흔한 판타지 소설도 읽지 않았다. 어쩐지 읽기도 전의 소설은 이미 내게 매력적인 녀석이 아니었다. 읽지 않았는 데 이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학창 시절 시험 문제 풀이용으로 접했을 때 그랬었다. 매번 등장인물의 감정을 추리하고 숨겨져 있는 복선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저 성적을 위한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자료 이상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을 느껴볼 새도 없이 빠르게 답을 적고 넘기기 바빴다.


그 첫 경험이 많은 것을 좌우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내게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그러다 베스트셀러들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소설로 돌아왔다. 멀리 돌아온 억울함이 컸는지 있는 이유, 없는 이유를 다 끌고 오기도 했다. 괜히 유명한 작가들이 대부분 '소설가'가 아닐 거라고. 그렇게 오갈 데 없는 내 독서 인생은 소설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요즘엔 책을 3~4권 정도 함께 읽는다. 들고 읽을 여유가 있을 때는 한국어 종이책과 영어 종이책을 읽는다. 그럴 여유가 없을 때는 전자책으로 흥미에 맞게 한 두 권씩 휴대폰에 넣어두고 읽는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고 있는 4권의 책이 모두 소설이다. 그 작가의 이름만 나열해도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찰스 디킨스, 조앤 롤링, 박완서, 테드 창. 어쩐지 요즘 읽는 것이 무척이나 좋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에 가더라도 그 굉장한 세계에 바로 푹 빠져서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동시에 이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며 즐거움이다. 이곳에서 내 어설픈 감상평은 필요치 않다.


소설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세계다. 등장인물부터 날씨, 건물, 돌멩이까지 모든 것이 작가에 의해 탄생한다. 이런 허구의 것들이 처음에는 허무맹랑에 보여서 소설을 싫어했다. 진짜 삶이 묻어있고 그 경험이 들어있는 책만이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이것은 그것보다 더 나아간 단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의 창작을 시작하면서 이미 작가의 모든 삶이 깔리게 된다.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세상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탄생한 모든 것들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연결되어있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보고 놀라는 것은 쉽지만 그 세계를 만드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소설’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읽으면 읽을수록 떨쳐내기 어렵다. 이런 경외심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낸 위대한 작가들을 우리는 끊임없이 찾아가 우러러본다.






소설을 만나면서 꽉 막히고 갇혀있던 독서의 길이 열렸다. 문 닫고 절대 들어가 보지 않으려 했던 그곳이 내 삶을 바꿨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각각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왕이면 쓰는 사람 마음대로 이런 인물도 등장시키고 저런 일도 벌어지게 하면 어떨까? 모든 설정과 전개가 내 삶의 작가인 내 마음대로라니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내 삶에 들어왔던 소설들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떻게 하면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옳은 지 수없이 이야기해줬다. 하루하루 한 장씩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는 내게 달렸다. 돌고 돌아서 내게  '허구' 소설이 뒤늦게나마 깨우쳐  고마운 '사실'이다.



<내 삶에 들어온 소설>
남아 있는 나날
두 도시 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왜 털은 계속 자라야만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