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 베이(Hervey Bay) 여행 1일 차
출발 전날부터 비가 왔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 올 예정이었다. 진정한 호캉스까지 각오해야 했다. 출발 당일 오전 파랑은 중요한 시험을 치르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게 기도하며 함께 여행 짐을 쌌다.
꽤 큰 아들 녀석은 이제 본인이 필요한 것들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에서 시작되었다. 자기 방을 통째로 옮기려는 아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사 가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가는 것이었기에. 거의 모든 인형과 장난감을 본인 캐리어에 챙겨 넣던 아들은 추가 캐리어를 요구했다. 깜짝 놀란 파랑은 아들과 함께 조율을 시작했다. 결국 말미에 아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여행 못 가는 친구들은 집에서 많이 외로울 거라고, 모두 데리고 가고 싶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멀리 오래 떨어지는 것이 오랜만이어서 아들이 여행의 감을 잃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집에 도둑이 들면 어떡하냐는 둥 아들의 걱정은 이어졌지만 잘 타일러서 우리는 차에 짐과 함께 올라탔다.
가는 길도 심심하지 않았다. 계속 비와 함께였기 때문에. 적당한 휴게소에서 빨강이도 기름을 마시고, 우리도 점심을 먹었다. 더욱 시골에 들어와서 그런지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점점 여행기분이 났다. 정겹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드디어 우리를 4일 동안 보살펴 줄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특히 아무 계획도 기대도 없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기대 이상이었다. 호텔이 아담하니 있을 것 다 있고 깔끔했다. 먼 길을 달려온 우리는 각자 편안하게 쉬었다. 아들은 ‘소닉(SONIC)’ 영화를 보고는 푹 빠져버렸다. (그 이후 1일 1소닉을 했다) 기분과 에너지를 충전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메뉴는 당연히 즉석 검색을 통한 파랑의 초이스였다.
라마다 호텔 / Ramada by Wyndham Hervey Bay
https://goo.gl/maps/3bgX7tfzZA8BpEkd6
거짓말처럼 비가 멈춰있었다. 일기예보 상에는 여전히 비 소식이 있었지만 우리가 나선 늦은 오후에는 오지 않았다. 그곳의 명물이라는 ‘Urangan Pier’를 보면서 바닷가 산책을 했다. 푸른 바다를 보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아들은 많이 흥분해서 좀 힘들어졌다. (아들 말고 우리가) 이상하게 많이 조용한 가게들을 지나치며 찍어둔 식당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닫혀있었다. 그 앞집도, 그 옆집도, 그 옆 옆집도 그랬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모두 닫혀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주말 장사 마치고 쉬고 있는 가게들만 잔뜩 구경했다.
Urangan Pier
https://goo.gl/maps/ykXgpEkP63GTd2oaA
결국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호텔 식당이 평이 좋았기에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당당히 들어섰는데 예약 여부를 물어보았다. 당연히 대답은 ’No’였고 15분 정도 뒤에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방과는 1분 거리였기에 예약을 해두고 돌아왔다. 그날 저녁을 무사히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15분이 다 지나버렸다. 다시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첫날 저녁이기에 우리는 좀 무리해서 먹고 마시고픈 것을 모두 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집 참 잘하는 집’이었다. 해산물 빠에야, 해산물 핫 팟, 샐러드, 맥주, 막테일. 모두 최고였다. 깜짝 놀라면서 다 먹었다. 벌게진 얼굴과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한 첫날밤을 보냈다. 빗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설마 계속 오겠어?’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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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를 채우는 새벽을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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