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두? 야 너도! 치킨집
<골목의 전쟁>
인터넷에서 한동안 많이 돌아다녔던 이미지(짤)가 있었다. 다양한 대학교 전공자가 가지게 되는 직업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보여주는 도표(테크트리?)였다. 중간 과정이야 어느 정도 다양할 수 있었지만 결국 ‘기승전 - 치킨집’이었다. 처음에 어떤 직장을 들어가더라도 문과든 이과든, 상경계든 공대든 결국 퇴직 후 먹고살기 위해 그나마 만만한 ‘치킨집’을 연다는 사회 현상을 풍자한 것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다른 이들과 함께 웃었다. 얼마나 할 게 없으면 저렇게 다 너도 나도 몰려들까 싶어서. 하지만 점점 연차가 올라가면서 쉽게 웃지 못했다. 그때 웃었던 그들의 상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회사 돌아가는 법을 알게 되고, 일을 해나가는 법을 깨달으면서 뭔가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만했다. 처음에는 못하던 일도 꽤 능숙해지고, 어려워 보이던 일도 쉽게 해 나가면서 일이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선과 생각이 회사만 바라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승진과 인사고과를 떠나서 이렇게 회사에 익숙해지면 퇴직할 때까지는 적당히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슬쩍슬쩍 비치는 회사 밖의 세계를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은 정말 ‘온실 속의 화초’의 순진무구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당장 회사에서 나가게 된다면, 내게 지금의 명함이 없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회사에서 배웠던, 그리고 내가 하고 있다는 그 일이 어떻게 회사 밖에서 쓰일 수 있을지 상상해봤다. 난 사실 회사의 부분 중의 부분, 그중에서도 아주 특정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전체 사업이 돌아가는 전부를 알지 못했다. 내가 해왔던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이메일을 보내고 하던 것들은 특별히 가진 능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 밖에서는 그다지 쓸만한 것을 가지지 못했다. 그때 불현듯 다시 처음의 ‘기승전-치킨집’이 생각났다. 팀장이든, 임원이든, 사장이든 회사를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던 것임을 이해했다. 이미 모두 차려진 곳에서 그저 말 몇 마디, 클릭 몇 번, 남에게 돈 주고 시키기 밖에 경험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돈벌이가 마땅히 없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이 ‘치킨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왜 있는지도 생각해보았다. 우리도 종종 생각날 때마다 시켜먹는 ‘치킨집’이 왜 그렇게 탐탁지 않은 기분이 들었을까? 그 이유는 주변에서 망해나가는 가게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근처에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그 신선함과 기대감에 시도해본다. 조금이라도 별로라면 가차 없이 발길을 돌린다. 기회는 딱 한 번밖에 없다. 다른 검증된 가게들이 많은데 두 번의 기회를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냉정하고 살벌한 이런 살고 죽음이 편하게 집에서 시켜먹는 저녁, 야간 시간에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늘 빠지지 않는 소재가 바로 이런 자영업자들의 실패로 인해 ‘골목 상권이 힘들다’이다. 덧붙여서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힘든 이유는 다른 대형 업자, 프랜차이즈 때문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되기도 한다. 단순하게 다 같이 살아가는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는 대형 기업이 좀 너무했나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품질이 검증된 곳에서 내 돈을 쓰고 싶다는 결론을 내기도 한다. 이제 잠재적인 ‘자영업자’로서 이 소식을 바라보면 마음이 혼란스럽고 편치 않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무렵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아주 호쾌 통쾌 상쾌하게 이런 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었다. 시쳇말로 ‘팩폭(팩트 폭행)’을 아주 논리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해준다. 저자는 오랜 경험과 내공을 토대로 이런 사회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외면하고 싶은 날카로운 진실을 전한다. 자영업자들이 힘든 이유는 망할 만하기 때문이고 차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 논리 상 모두가 장사가 잘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잘 되고, 누군가는 안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어요’라는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손님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이 그렇다. 징징이는 대부분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상태로 징징대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이는 성공하기 위한 노력을 ‘주업’으로 한다. 핑계와 남 탓을 대는 순간 상황은 끝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포기 선언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소신을 가지고 묵묵히 노력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강점, 차별화를 찾아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남들이 이거 좋다, 저거 좋다 해서 우르르 따라가서는 별 볼일 없다. 최근에 접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성공담을 담은 책을 사는 것은 결국 그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려 줄 뿐이다.’ 다소 센 표현이긴 하지만 뭔가 하나 잘 되었다고 하면 이거다 싶어서 모두 따라 하는 행태를 비꼬는 것이다. 물론 참고는 해야 하고, 자극은 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양 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방식일 뿐이다.
언젠가 모두 사장님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건강하게 자신의 강점으로 성장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기간에는 주변에서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을 것이고, 그 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 것’이 없다면 우연한 성공은 잠깐에 불과할 것이기에 꼭 ‘내 것’을 가져야 한다. 회사 안에서만 편안하게 생활하다 ‘내 것’ 없이 갑작스레 회사 밖을 나온다면 다음 직업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곧 '망할 치킨집 사장'이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골목의 전쟁’ (김영준) - 2018 완독
저자의 내공과 식견이 돋보이는 책. ‘자영업’의 본질을 꿰뚫고 모두들 막연히 부정적인 말을 뱉을 때, 이를 분석하여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자영업자 지옥'이라는 말이 아닌, 왜 그렇게 되었으며, 정말 지옥 같은 상황인지를 보자고 한다. 나만의 강점으로 살아남은 자영업자가 건강하게 성장하여 경제의 한 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조언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창업을 해야 하고 사장님이 돼야 한다. 저자의 조언을 참고하여 남 탓만 하지 않는 현명한 자영업자가 되어야겠다.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