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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8. 2022

두리번거림의 쓸모

<도시를 걷는 시간>

지금이야 조금 나아졌지만 난 걸어 다닐 때 절대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길을 나서면 항상 목적지와 도착시간을 생각하며 늘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는 이상은 항상 최단거리를 통해 직진하며 목표를 향해갔다. 이런 습성은 산책이나 나들이를 갈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언제나 효율을 따졌고 하려고 했던 것을 빠르게 해내려고 집중했다. 실용적 일지는 몰라도 창의적이지도 공감적이지도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해진 길 외에는 고민도 생각도 없이 달려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고 싶었다면 스스로 주변을 더 둘러보고 이리저리 돌아가 보고 할 수 있었겠지만 어쩐지 나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그게 제일 편해서였던 것 같다. 불편함이 없으니 그저 앞만 바라보고 쉴 새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지금은 나와 전혀 다른 두 명과 살고 있다. 한 명은 ‘두리번 대왕’으로 부르는 파랑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우리 집에서 가장 창의적인 ‘홍카소’ 아들이다. 이 둘은 절대 정해진 목적지로 바로 달려가지 않는다. 한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주변을 둘러보고 살펴보고 생각한다. 함께 다닐 때는 마구 앞으로 가지 못해 나는 늘 동동거린다. 수백 번을 다닌 길임에도 난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을 이들은 단 한 번에 알아차린다. 함께 책을 읽거나 무엇을 볼 때도 꼭 순서와 다른 쪽을 보고 있고, 떠오르는 생각을 낙서로 옮기고 있다.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해야 하는데 저것에 먼저 눈길이 돌아가는 것이. 물론 새롭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제안은 늘 이들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그 ‘두리번거림’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저 나와 다른 이들이 어색할 뿐이다.


서울 생활을 대충 20년 정도 했음에도 이런 특성으로 주변을 잘 둘러보지 않아서 여전히 많이 모른다. 매번 다니는 길로만 빠른 속도로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나도 ‘시야’라는 게 있기에 가끔 생뚱맞게 자리 잡은 ‘표석’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것에는 오래전에 그 장소가 이런 곳이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역사에는 관심이 있어서 어쩌다 마주한 옛날이야기를 읽고 나면 괜히 그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되었다. 지금의 이런 도시 풍경이 과거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상상을 하고 나면 기분이 묘해진다. 지금 내가 바쁘게 지내는 이 순간과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먼 훗날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하니 공허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던 길을 원래와 같이 앞만 보며 나아간다. 방금 지나친 ‘표석’을 아주 못 본 것처럼.


이 책은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찾아왔다. 매번 있는지도 모르고, 또는 마주쳐도 바로 잊어버리곤 했던 서울 곳곳의 ‘표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도 따로 알려주지 않았던 작가의 친절하고 따뜻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과거의 서울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덕분에 그 이후에는 표석이 눈에 띄면 한 번씩 더 가서 보게 되었다. 그렇게 가끔 다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을 새롭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지금이 모두 흘러가 과거를 채우는 듯했다.


작가는 인간의 생애에 있는 3 무를 '공짜, 비밀, 정답’이라고 했다. 진리였다. 특히 ‘정답이 없다’는 통렬했다. 살면서 많은 것을 고민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그 과정 속에서 ‘답이 없구나’라는 것을 발견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들이 각각의 답이며 스스로에게 제일 소중하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채우고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다. 귀중한 나만의 순간을 그저 항상 똑같이 앞만 보며 갈게 아니라 조금 더 두리번 대며 새로움을 채워 넣는 게 낫지 않을지. 당장 쉽지는 않겠지만.




읽었던 그때  순간의 감정과 느낌


<도시를 걷는 시간> (김별아) - 2018 완독


서울 곳곳에 있는 표석들이 궁금했지만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가 일쑤였다. 작가와 같이 챙겨 봐주시는 분이 있어 다행이다. 지금 우리의 역사도 나중에는 눈여겨보지 않는 표석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럼에도 지금을 충실히 살아야만 표석까지도 남길 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 ‘시간'을 모두 다르게 쓰는 모양새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난 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을까.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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