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긋지긋해. 팀장한테 찍혔어!
언제나 다른 이를 살폈다. 그들의 기분이 어떤지 나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그에 따라 내 기분도 생각도 좌지우지되었다. 그렇게 아주 오래 잘못된 줄도 모르고 살았었다. 그랬던 ‘남 눈치 보기 대왕’이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고 결심했다. 육아휴직을 내고 호주 살기를 결정했다. 갑자기 모든 것을 중단하고 떠난다고 했을 그때. 수없이 질문을 받았고 수없이 답했던 그 대화다. <Question : 왜 갑자기 쉬려고? / Answer : 이제 내 마음대로 좀 지내보려고!>
모두가 궁금해했었다. 멀쩡히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왜 갑자기 떠나냐면서. 그리고 은근히 건네는 걱정들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 한창 일할 때인데...’, ‘지금 한창 벌어야 할 때인데...’, ‘벌써 힘들다고 쉬면 안 될 텐데...’ 생각해보니 이건 모두 그들의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 맞다. 내가 쉬려는 이유는 이런 남들 생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는 이런 멘트를 날려주었어야 했다.
‘나 그거 그동안 충분했어’인데 무엇인가 지겹도록 해와서 지긋지긋하단 말이다. 이제 주변에서 정해놓은 그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괜히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눈치 보기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쉬기로 하고 떠났다.
이렇게 내 마음을 설명해도 진짜냐고 확인하는 멘트가 꼭 들어온다. 때론 즉흥적이고 기분파인 내가 잠깐의 감정으로 결정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거 그냥 해보는 말 아니고 진짜야?’
‘이걸 의미하는 거 맞아?' 정도인데 ‘너 진심이야?’라는 말이다. 그럼, 진심이지. 진심이고 말고!
이렇게 결정했다고 하고 진심이라고 해도 추가 질문이 계속된다.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더냐?', '직장 상사, 동료들은?', '그리고 가족, 친척들은?' 하아...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 다 이해시키면서 살지 않기 위해서 떠나는 거라고요. 이럴 땐 시원하게 말해보자!
'그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아’ 즉,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는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지 유사 표현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없다는 시크한 표현이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하면 알아 들었겠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기도 부족한 게 인생이더라!
회사에선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군대에서도 그 인간 군상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지만 그것은 필터 조건이 ‘젊은 한국 남자’로서 아주 느슨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래도 여러 가지 조건과 검증을 거치고 모인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오죽하면 ‘회사에 미친놈이 없다면 당신이 미친놈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이상한 사람이 많이 존재한다.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 없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어로 말해보자.
그가 또 일을 저질렀다. 회의 시간에 어이없는 태도로 모두의 시간을 허비했다. 이번 회의를 주관했지만 사전 준비도 거의 하지 않았고, 회의의 목적도 불투명했다. (혹시나 역시나) 결국 너도 나도 알고 있는 당연한 정보 공유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갔다. (그럴 바엔 각자 공부하자) 참다못한 팀장이 회의를 중단시키고 다음에 더 준비해서 모이자고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이런 모습 처음이야)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지내왔는데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나쁘게 찍혔다. 도대체 그는 왜 그럴까? (혹시 일 안 하려고 일부러?)
그 회의 이후 억울하다고 온 사방에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그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어떻게 업무 시간에 자기 하소연을 하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제대로 준비를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게 며칠 후 다시 모인 회의 시간. 회의가 진행될수록 모두의 표정이 굳어간다.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이 사람에게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다고 속으로 외치게 된다.
정말 머릿속이 아파서 올바르게 가지 못하고 구부러져 돌고 돌아서 돌아버린 모양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회사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 결국 이번에도 팀장이 회의를 중단시키고 그를 따로 불렀다.
그는 이제 일이 없어졌다. 정확이 이야기하면 생각과 고민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하지 않는다. 팀장이 그런 업무에서 그를 배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어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다행으로 여기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하루 종일 놀다가 가는 것 같다. 아침 지각은 기본이고, 중간에 사라져서 커피와 담배로 시간을 한참 보내기 일쑤다. 그러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사라진다.
월급 루팡이 따로 없다. 시계만 보다가 하루를 보낸다. 근무시간 단위로 받아 가는 월급이기에 어떤 일을 하든지 시간만 채우면 돈을 따박따박 받아 가는 것이 너무 불합리하다. 그는 원래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슬기롭게 회사 생활을 해왔던 것일까? 원래는 엄청 잘 나가던 유망주였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