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Sep 13. 2022

강요받는 동의

그렇지 않아요? 아닌데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지는 꽉 막힌 용어 탓에 외워야만 했던 영어 문법. 이해가 빠진 공부는 해도 해도 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중 딱 하나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부가 의문문'이다. 물어보는 말이 아닌 평탄한 문장 뒤에 붙어서 의미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오늘 날씨 좋네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게 한국어와 달라서 언제나 고통받던 영어에서 유일하게 머리에 남은 이유는 우리말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기분이 축 처지네, 안 그래?"처럼. 찾아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유사한 부분이 더 있겠지만 유독 이 표현은 내게 특별하다. 강렬하게 새겨진 만큼이나 무척 싫어해서다.


어쩐지 여지가 없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분이 별로다. 동의 여부를 떠나서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게 억지스럽다. 혹시라도 반대로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며 쳐다볼 커다란 눈이 겁난다. 맑은 하늘이 우울한 일로 안 좋게 느껴질 수 있고, 우중충한 안개에 독특한 취향이 저격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주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사람이나 한없이 수다스러운 이가 자주 사용한다. '그렇지? 그렇죠? 안 그래요?'를 꼭 뒤에 붙이며 자기 말을 참인 명제로 만들기 위해 도장을 꽝꽝 찍는다. 의자에 앉으면 저절로 다리를 떨게 되는 못된 습관처럼 빠짐없이 딸려 나오는 확인 사살 질문이 불편하다.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선택지에 반대 의견이 없는 닫힌 질문이다. 의도가 뻔한 데 괜히 아니라고 대꾸하면 싸우자고 덤벼드는 모양새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동의를 강요하는 버릇을 가진 채 말끝마다 고개를 끄덕여 달라고 하는 사람과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무섭다. 이번에 그렇다고 하면 다음엔 또 어떤 걸 들이댈지 몰라서. '아니요'가 배제된 순간을 애매한 눈웃음으로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이 유일하고 독특하길 바란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거라 듣자마자 동의받고 싶지 않다. 나 말고도 다 할 수 있는 거라면 굳이 내가 고민하고 떠올려서 내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에 나까지 보태야 할까. 해야 한다면 나니까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싶다. 그래서 싫다. 자신이 한 말이 모두 다른 사람과 같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가벼움이. 다른 이의 생각은 그래 봤자 자기 손바닥 안이라고 여기는 오만함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좁음이. 진정한 대화라면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묻는 말에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니라는 대답을 인정하지 않을 태도로 무장한 자에게 "전 아니니까 그렇게 묻지 말아요."라며 시원하게 뱉고 돌아서고 싶은 적이 참 많았다.


동의를 강요하는 사람의 특징은 부가 의문문만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쓸 수 없는 말을 자주 쓴다. '신'의 용어 3종 패키지인 '원래, 당연, 절대'. 꽤 익숙한 표현 아닌가? "이거 원래 그런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절대 그럴 수 없어!" 불완전한 인간은 이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로지 절대적인 존재, 신이 아니면 쓸 수 없다. 신을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에서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 단어들을 쉽게 입에 담으면서 불변의 진리라고 외치며 강요한다.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티를 내면 뻔한 답을 눈앞에 가져다줘도 못 먹는 녀석이라며 웃어 젖힌다. 괴롭히는 그들에 대한 증오보다 더 슬픈 건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부끄러운 인정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정해지면 곧바로 신의 언어를 손쉽게 붙여서 말하곤 했다. "뭘 고민해. 이건 너무도 당연한 건데!"


얼추 생김새가 비슷하고 대충 다르지 않게 사는  같아서 우린 자주 오해한다. 쟤나 얘나 나나  똑같을 거라고. 들을 때마다 지겹고 걷어내고 싶은 말이  있다. "사는   똑같지 ." 이럴 거면  사나 싶다. 어떻게 살아도  똑같을 거면 살면서 겪는 수많은 고민과 결심, 인내가 무슨 소용인가. 모두 달라지고자 사는  아닌가?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싶어서 지금  순간  쉬고 있는  아닌 건지. 인생은  번뿐이다,  인생은  것이에요, 우리에겐 지금 뿐이죠 같은 식상한 말을  하자는  아니다. 각각  다르게 살면 좋겠다. 나와 네가 다르고 너와 내가 다르면 좋겠다. 빈틈없이 똑같기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말자. 각자 다름의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조금만 특이하고 튀어도 가만히 두질 못하고 , 쾅쾅 두드려서 못난 믿음의 이름인 평범으로 돌려놓는  아닌가.


타인을 어쩔 수는 없다. 내가   있는 일은 꿋꿋하게 다르게 사는 것과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마음이 닫힌 무지한 이의 강요에 흔들리지 않겠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며 나만의 사상을 만들고 지켜가겠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것을 억지로 들이대지 않겠다. 누구도 나와 같을 거라고 단정 짓지 으며. 나는 나를 지키고 너는 너를 지키며 하나같이 모두 다르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