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요? 아닌데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지는 꽉 막힌 용어 탓에 외워야만 했던 영어 문법. 이해가 빠진 공부는 해도 해도 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중 딱 하나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부가 의문문'이다. 물어보는 말이 아닌 평탄한 문장 뒤에 붙어서 의미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오늘 날씨 좋네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게 한국어와 달라서 언제나 고통받던 영어에서 유일하게 머리에 남은 이유는 우리말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기분이 축 처지네, 안 그래?"처럼. 찾아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유사한 부분이 더 있겠지만 유독 이 표현은 내게 특별하다. 강렬하게 새겨진 만큼이나 무척 싫어해서다.
어쩐지 여지가 없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분이 별로다. 동의 여부를 떠나서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게 억지스럽다. 혹시라도 반대로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며 쳐다볼 커다란 눈이 겁난다. 맑은 하늘이 우울한 일로 안 좋게 느껴질 수 있고, 우중충한 안개에 독특한 취향이 저격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주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사람이나 한없이 수다스러운 이가 자주 사용한다. '그렇지? 그렇죠? 안 그래요?'를 꼭 뒤에 붙이며 자기 말을 참인 명제로 만들기 위해 도장을 꽝꽝 찍는다. 의자에 앉으면 저절로 다리를 떨게 되는 못된 습관처럼 빠짐없이 딸려 나오는 확인 사살 질문이 불편하다.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선택지에 반대 의견이 없는 닫힌 질문이다. 의도가 뻔한 데 괜히 아니라고 대꾸하면 싸우자고 덤벼드는 모양새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동의를 강요하는 버릇을 가진 채 말끝마다 고개를 끄덕여 달라고 하는 사람과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무섭다. 이번에 그렇다고 하면 다음엔 또 어떤 걸 들이댈지 몰라서. '아니요'가 배제된 순간을 애매한 눈웃음으로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이 유일하고 독특하길 바란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거라 듣자마자 동의받고 싶지 않다. 나 말고도 다 할 수 있는 거라면 굳이 내가 고민하고 떠올려서 내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에 나까지 보태야 할까. 해야 한다면 나니까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싶다. 그래서 싫다. 자신이 한 말이 모두 다른 사람과 같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가벼움이. 다른 이의 생각은 그래 봤자 자기 손바닥 안이라고 여기는 오만함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좁음이. 진정한 대화라면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묻는 말에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니라는 대답을 인정하지 않을 태도로 무장한 자에게 "전 아니니까 그렇게 묻지 말아요."라며 시원하게 뱉고 돌아서고 싶은 적이 참 많았다.
동의를 강요하는 사람의 특징은 부가 의문문만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쓸 수 없는 말을 자주 쓴다. '신'의 용어 3종 패키지인 '원래, 당연, 절대'. 꽤 익숙한 표현 아닌가? "이거 원래 그런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절대 그럴 수 없어!" 불완전한 인간은 이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로지 절대적인 존재, 신이 아니면 쓸 수 없다. 신을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에서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 단어들을 쉽게 입에 담으면서 불변의 진리라고 외치며 강요한다.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티를 내면 뻔한 답을 눈앞에 가져다줘도 못 먹는 녀석이라며 웃어 젖힌다. 괴롭히는 그들에 대한 증오보다 더 슬픈 건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부끄러운 인정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정해지면 곧바로 신의 언어를 손쉽게 붙여서 말하곤 했다. "뭘 고민해. 이건 너무도 당연한 건데!"
얼추 생김새가 비슷하고 대충 다르지 않게 사는 것 같아서 우린 자주 오해한다. 쟤나 얘나 나나 다 똑같을 거라고. 들을 때마다 지겹고 걷어내고 싶은 말이 또 있다.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이럴 거면 왜 사나 싶다. 어떻게 살아도 다 똑같을 거면 살면서 겪는 수많은 고민과 결심, 인내가 무슨 소용인가. 모두 달라지고자 사는 거 아닌가?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싶어서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게 아닌 건지. 인생은 한 번뿐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에요, 우리에겐 지금 뿐이죠 같은 식상한 말을 또 하자는 게 아니다. 각각 좀 다르게 살면 좋겠다. 나와 네가 다르고 너와 내가 다르면 좋겠다. 빈틈없이 똑같기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말자. 각자 다름의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조금만 특이하고 튀어도 가만히 두질 못하고 , 쾅쾅 두드려서 못난 믿음의 이름인 평범으로 돌려놓는 게 아닌가.
타인을 어쩔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꿋꿋하게 다르게 사는 것과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마음이 닫힌 무지한 이의 강요에 흔들리지 않겠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며 나만의 사상을 만들고 지켜가겠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내 것을 억지로 들이대지 않겠다. 누구도 나와 같을 거라고 단정 짓지 않으며. 나는 나를 지키고 너는 너를 지키며 하나같이 모두 다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