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
바야흐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알려면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알 수 있는 시대다. 넘치는 홍수 속에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 선택이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이런 세상이 나 같이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겐 괴롭다. 그럴 땐 그냥 대세를 따르는 게 마음 편하다. 서로 몰랐더라면 나름 각각 달랐을 텐데 이젠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비슷비슷해졌다. 이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모르는 것이 없어졌는데도 그 안에는 대유행이 자리 잡았다. 과거에 몰랐던 넘치는 아이디어와 생각이 공유되고 퍼지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선택이 주를 이룬다. 아마도 나 같이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저런 트렌드가, 현재에는 이런 트렌드가 주류를 이룬다. 심지어 미래의 트렌드까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니 얼마나 사람들이 자신의 기호보다는 남들이 정해준 기호를 열심히 따르는지 알 수 있다. 이거라고 하면 이리로 우르르, 저거라고 하면 저리로 우르르. 이 와중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오히려 민망하고 우둔해 보일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자신만의 선택을 한 자들이 있다. 그 선택은 그만의 무엇을 보여주며 다 똑같은 남들 사이에서 더욱 튄다. 그런 이를 발견하는 우리는 놀라며 외친다. '와! 저 사람 참 스타일 좋다!' 그렇다. 우리는 고유의 스타일에 반한다. 실상은 내가 고르지 않은 것을 열심히 따르며 살지만, 마음은 누군가의 우뚝섬에 매력을 느낀다. 그만큼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것을 편하게 쫓아가는 것보다 스스로 한 선택을 지켜나가는 것은 분명 특별하다. 안타까운 것은 홀로 서 있는 그에게 여러 추종자가 생기면서 그것이 또 다른 대세를 만드는 현상이다. 남의 것을 쫓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습성이라서 바꿔놓기 어렵다. 할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대세왕(대세 따르기 대마왕)인 나도 마음은 늘 그렇다. 아이디어도 없고 의지도 없기에 그냥 대충 따르면 사는 거다.
살면서 가끔 주변에서 그런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무엇을 해도 남다른 사람. 그것이 꼭 세상에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해서 성공적이고 잘난 게 아니었다. 그가 하는 생각과 말, 행동에는 자신만의 그것이 있었다. 늘 평균 그 언저리, 좀 더 바라면 평균보다 약간 위를 추구하는 평균 덩어리인 내겐 놀라움 투성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함과 호기심에 배경을 파 보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 나와 다른지. 가끔 자라오고 배워온 환경이 조금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속에 있었다고 해서 그런 스타일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선택을 믿는 삶의 태도가 켜켜이 쌓여서 된 오랜 걸작품에 가까웠다. 아무나 그곳에 넣어 둔다고 유일한 스타일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나 같은 대세 바라기는 그 안에서도 남들을 살피며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따르는 것을 찾아 합류했을 것이 분명하다.
호주 살기를 시작하기 전에 남의 생각에 기웃대기 위해 이런저런 호주 책을 읽었다. 딱딱한 정보책보다는 여행기를 주로 읽었다.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책들이 여럿 있었고 독특한 책이 아주 가끔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두 작가의 책이 있다. 대세를 따르는 책들과도 확연히 다르지만, 두 작가끼리도 완전히 다르다. 주제는 '호주 여행'으로 일치하지만, 똑같은 호주 땅덩어리를 여행하고 남긴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랍다.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어서 뻔한 여행 가이드 서적을 바란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원래 대세를 따르고 싶어 하는 자는 벗어난 것을 보면 대세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아쉬워한다. 한시라도 빨리 남이 주로 하는 것을 해야 하는 데 마이너에 불과한 것에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말을 뱉는 내게 놀랐다. 뭔가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하는 듯한 말투다. 전과는 달라진 삐딱한 생각은 타지에서 보내는 '대세 없는 생활'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을 해도 내 스타일로 하고 싶다. 말을 해도 글을 써도 행동을 해도. 살아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나였으면 좋겠다. 나만 알아도 좋고 누군가 이건 정말 너 같다고 가끔 알아줘도 좋겠다. 내 삶에 나라는 사람이 곳곳에 묻어나면 좋겠다. 남은 시간은 전처럼 남을 뒤쫓지 않고 살고 싶다. 나 빼고 모두 다른 길을 가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 '와! 저 사람 참 스타일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브라이슨/알에이치코리아) - 2019 완독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미국 작가 특유의 유머가 녹아져 있었고 내가 이것을 꽤 즐긴다는 걸 알았다. 호주에 대한 본인의 주관을 가지고 오지를 포함해서 이곳저곳을 차로 열심히 여행을 다녔고 모든 걸 솔직하게 전한다. 한 마디로 호주는 아주 놀라운 곳이었다. 밝혀진 곳도, 밝혀지지 않은 곳도 모두.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에 관한 서양 문화에 대한 회의감도 내비쳤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내가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호주의 밝혀진 곳을 경험하고 나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곳도 가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녀온 학창 시절의 호주와 목적을 가진 이번의 호주가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호주로 떠나기 전 마음 준비를 위한 책으로 안성맞춤! (절대 절대 여행안내 책자 아님)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 (엘리스 리/홍익출판사) - 2019 완독
한두 번 호주 여행을 해본 사람의 그저 그런 에세이로 치부할 뻔했다. 호주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가득 담긴 한국인 작가의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정형화된 정보의 전달 방식이 아니라 작가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의 계획적이고 까칠한 성격이 나와 닮아있어서 중간중간 공감하며 웃곤 했다. 지금 호주 여행과 살기를 준비하며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마무리 정리를 해보는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가보고 싶은 곳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더 많은 호주 곳곳을 다녀보고 싶어졌다. 내 스타일을 만들어가면서.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