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Feb 17. 2023

나도 이야기 꾼이 되고 싶은데

<맛>

주변에 꼭 한 명씩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참 맛깔나게 해내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적절한 리듬으로 알맞은 표현을 쓰면서 때론 감질나게 때론 폭발적으로 풀어내는지 놀랍다. 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같은 일을 함께 겪은 친구가 대신 이야기할 때면 옆에서 불안하고 좀이 쑤셨다. '아, 여기서 잠깐 쉬어야 하는데. 아, 저기서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게 전개되면 참지 못하고 뛰어들어 끊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즐거운 이야기를 싱겁게 전하는 건 무엇보다도 아쉬운 순간이기에 살리고 싶었다. 기왕이면 우리의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웃음이 넘치길 바랐다. 그런 능력이 내게 조금은 있다고 믿으면서.


책과 글을 읽으면서도 같은 버릇이 자주 튀어나왔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하면 바로 작가로 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여기서 순서를 이렇게 바꿨다면? 저기서 좀 더 간결하게 나갔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훈수 두는 거라서 이건 질리지 않는 유희에 가까웠다. 가끔은 혼자 제 상상에 놀라며 아쉬움이 남아 입맛을 다시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의미 없이 지루하게 흘러가면 소중한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무리 내용이 유익하고 좋아도 재미없이 흘러가면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흥미로움이 빠진 채 진지함만 넘치는 이야기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직접 글을 쓰면서도 이 버릇은 여전하다.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 '끝까지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까?'이다. 주제와 소재, 흐름과 굴곡, 문체와 단어 등 신경 쓸 부분이 참 많지만, 어떤 것보다도 곳곳에 재미 요소를 넣고 싶다. 끊이지 않고 흥미롭게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글을 전하길 원한다. 그게 꼭 우스운 말이나 단어가 아니더라도 읽는 이의 눈과 머리를 붙잡는 식으로. 같은 내용을 쓴 여러 글이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몰입감 넘치며 흡입력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첫 부분, 첫 문장을 많이 고민하고 신경 쓴다. 읽을 때 중간부터 또는 거꾸로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맨 처음에 승부가 날 테니까. 상상력이나 창의력과 먼 삶을 살아온 식판밥 마니아가 하는 고민으로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창작은 결국 쌓인 경험에서 나오는 데 이는 결국 '수많은 읽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재미에 미친 내가 신기하게도 읽으면서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침범하지 못할 때가 있다. 몇몇 특정 작가의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은 속수무책으로 사라진다. 그저 마음 졸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따라가기 바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로알드 달'이다. 이 작가는 시쳇말로 정말 '미쳤다'에 걸맞은 이야기꾼이다. 깊게 빠져버린 뒤로 20권 정도 줄줄이 읽었는데 어느 것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다. 어느 정도냐면 심지어 하품 나오기 딱 좋은 본인 태어나 살아온 이야기도 엄청나게 재밌다. 위인전이나 자서전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하는 게 맞는데도 이 재주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남에게 이야기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내 믿음과 신념에 딱 맞다. 이번 단편소설집도 읽으면서 얼마나 뒤통수를 얻어맞고 무릎을 쳤는지 모르겠다. 혼을 빼놓고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다면 그곳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거라 장담한다.


살아가기도 바쁜 데 남의 목소리를 들어줄 시간은 많지도 않고, 잘못 쓰면 자칫 아깝다는 마음만 들고 만다. 이왕이면 귀중한 시간을 즐겁게 채우면 좋겠다. 순식간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듣고 싶거나 배우고 싶다면 이 작가를 만나보자. 독자로서 즐기는 것도 작가로서 우러러보는 것도 모두 쉽게 넘지 못할 큰 산이다. 이런 큰 산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이야기 세계는 재미가 보장된다. 이제는 멈춰 선 놀라운 작가의 이야기를 점점 다 읽어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맛' (로알드 달/강) - 2019 완독


이야기꾼이다. 그것도 아주 대단하고 멋진! 블랙 코미디 느낌이 곳곳에 있지만 아마도 그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총 10작의 단편이 한 편 한 편 완성도 높고 매우 재밌다. 늘어짐이 없이 단단하게 끝까지 긴장감을 가져가는 그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을 그의 이야기!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괜한 부모의 욕심이 흘러나올 때 막아줄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