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Apr 27. 2023

이런 시선으로 글을 쓰고 싶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언젠가 나름 기대했다가 역시나 떨어진 공모전의 심사평이 머리와 마음에 계속 남았다. 여러 심사위원의 총평 중 가장 날카로운 이 말이 떠나지 않는다.


에세이 매대에서 이미 본 듯한 스타일과 구성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치유 이상의 작품,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입체적으로 등장시키는 작품, 호기심과 탐구와 실천이 계속되는 작품을 주로 선택했다.

모든 것에 대한 평은 결국 개인의 취향이다. 취향은 모두 다를 수 있고 설명하거나 설득하기 어려움이 있으므로 따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평을 보아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정도로 넘어간다. 이번 심사평의 문장을 보고도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저 위치에서라면 무슨 말을 해도 되겠지. 그런 삐딱한 마음으로 수상 작품을 둘러보았다. 화급히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왔다. 한 글자씩 다시 읽었다. 수상 작품과 일치했다. 어디에나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아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응모한 작품을 떠올려 보니 피해 가기 어려워 보였다. 단순히 부족하고 모자란 것보다는 이런 시선으로는 좋게 보일 수 없었다.


매일 쓰면서 매일 생각한다. 나는 무슨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 건지. 어떤 글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 있는 건지. 생각 없이 타자만 두드려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느낀다. 쏟아내기 바쁜 시절도 오래가지 않는다. 요즘엔 쓰기 전과 쓰고 나서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시작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지고 쓴 뒤에 돌아보며 하는 아쉬움이 깊어진다. 쓰는 중에는 모른다. 이미 시작된 글에는 멈춤이 없다. 시작과 동시에 그 흐름과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별생각 없이 눈뜨고 앉아서 쓰는 시절은 끝났다. 잠들기 전부터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뭔가 좀 다르게, 나만의 것으로 써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진다. 결국 글도 그 사람이기에 내가 듣고 보고 생각하는 것에 달려있다. 고만고만함의 대명사인 내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의심이 점점 짙어져 간다.


의혹을 품고 책장을 지나가다 문득 한 책을 스쳤다. '어라?' 하는 발견으로 읽은 책을 다시 펼쳐 읽었다. 처음의 심사평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글이 가득했다. 맞았다. 이 책을 읽을 때의 기분이 그랬다. 작가의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시선을 계속해서 쏟아낸다.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 그리고 실천이 담겨있다.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것. 내가 무슨 생각을 해도 대충 다 그렇고 그런 상식의 언저리에 머물러있었다. 나름 비틀고 뒤집어 보지만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의 자리바꿈은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소재가 특별해서 이런 글과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같은 상황과 주제를 가지고도 천차만별의 글이 나올 수 있다. 순전히 작가의 능력 덕이다. 누군가는 힘들고 더럽고 거지 같은 날들이었다고 했을 수 있다. 천재는 전혀 다른 것들을 남겼고 새로운 사상을 탄생시켰다. 작가의 눈이 탐나는 순간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수없는 글과 책이 탄생하고 있다. 쓰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종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내가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가진 이 순간에도 분명히 뭔가 다른 것들이 태어나고 있다. 그들은 나와 뭐가 다른가. 애초에 다르게 태어난 것일까? 나의 다름은 왜 내가 바라는 그 다름이 아닌가? 단순히 글자로 털어놓지 못해 답답하던 시간은 끝났다. 생각하기 위해 써온 시간은 점점 뒤로 가고 쓰기 위해 생각을 하게 된다. 튀지 않게 남들에 맞춰서 갈고닦던 지난 세월이 아쉬워만 진다. 이제야 뭉툭해져 찾기 힘든 요철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나만의 날카롭고 튀어나온 부분이 어디일까 하는 마음으로.


이왕 쓰는 거 고만고만해지고 싶지 않다. 내가 쓰지 않아도 이미 도처에 널려있는 것들을 굳이 다시 찍어내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쓰기만 하면 나만의 글이 되기에 특별해진다고 믿었다. 내가 특별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도 모르고. 오늘부터 처음 쓰는 기분이다. 나는 어느 곳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거기서부터 내 글은 시작된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삼우반) - 2019 완독


(남아있는 문장) 

'사실적으로 보아 걸인은 다른 비즈니스맨처럼 일이 들어오는 대로 생활비를 버는 비즈니스맨일 뿐이다. 걸인은 대부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다만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 것뿐이다.'


매우 인상적이다.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않을 주제를 다루었다. 거의 모든 책은 좋은 것을, 그리고 더 좋을 것을 다루고 있거나, 중요한 것을, 그리고 더 중요할 것을 다루기 마련이다. 이 책은 아무에게도 관심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기피 대상일 수 있는 ‘밑바닥 생활’을 다루었다. 한마디로 '거지 같은 거지 생활'에 대해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게 무슨 책으로서 의미가 있을지 처음에는 단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이었기에 달랐다. 읽는 재미를 끝까지 풍기며 꾸준히 흥미진진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하층계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이 특별히 모자라고 나쁘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작가의 해석이며. 이들을 일반적인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고. 나중에 쓰일 ‘동물농장’, '1984년’과 같은 작품의 기반을 이 당시의 경험에서 다진 것으로 보인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수많은 오해와 편견만 품고 있었다. 단순하게 여유 있는 자가 사회를 위해 베풀고 나누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선과 기부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책이 전하는 핵심을 요약하면 '사람은 모두 사람답게 일하고 먹고 쉴 자격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도겠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걸인에게 베풀면서 감사의 표현이나 마음을 기대하면 안 된다’였는데, 이런 기대 자체가 괜한 우월한 의식을 보이는 것이며, 걸인들은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인간이며 사람임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래도 너보다는 나은 사람이지’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 평등에 대한 동의가 안 되기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갈등과 차별이 시작된다고 본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세계는 완벽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