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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5. 2023

현실은 상상으로부터

<Matilda/The Witches>

어릴 때 자주 하던 상상이 있다. 바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 눈만 살짝 감으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가고 싶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었다. 보고 싶은 광경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모자랄 정도로 내 비행 능력은 굉장했다. 원하면 저 검은 우주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난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하얀 구름을 헤쳐 나가며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훌쩍 다녀오곤 했었다.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위를 슉슉 지나가는 기분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었다. 집에 왔을 때쯤 눈을 떠야 하는 순간은 아주 조금만 아쉬웠다. 언제든 원하면 다시 날아갈 수 있었기에.


한 가지 더 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놀라운 기술, '투명 인간'. 이 은밀한 기술은 나도 모를 내 마음을 채웠다. 가볼 수 없는 곳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 아는 사람들이 내가 안 보이면 나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혼자서 어떻게 사는지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날아가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영원히 모를 수 있는 것을 내 마음대로 그려보는 흥분된 순간이었다. 그게 정말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꾸며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정말 그렇게 벌어지는 곳이었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현실을 종종 깜빡할 만큼 매력적인 순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던 그즈음, 갑자기 힘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하늘을 날 수도 투명하게 변할 수도 없었다. 그 이후 상상하는 방법을 영원히 잊어버렸다. 그나마 강렬했던 그때의 추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게 내 것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그때의 그 감각은 희미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땐 누가 따로 가르쳐주거나 맡겨둔 게 아니라서 나만의 것인 줄만 알았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누가 잠시 빌려준 게 아닌가 싶다. 눈만 감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나는 이제 눈만 감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만 잔다. 어릴 적 마음껏 즐기던 내 상상들. 분명히 내 것이었는데 더 이상 할 수 없다. 어느 순간 현실이 상상보다 더 흥미로워진 걸까? 아니면 현실만 살아가기도 충분히 버거워서였을까.


현실이 되어버린 당연한 것들은 모두 상상으로 시작되었다.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로봇. 과거에는 꿈에서나 그리던 게 모두 현실로 들어왔다. 이렇게 현실과 상상은 이어져 있다. 상상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그 상상이 없었다면 이 현실도 없다. 누군가는 계속 상상을 한다. 모두가 나 같이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꿈꾸는 이가 존재한다. 이건 내게 큰 희망이다.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무조건 상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증거니까.


명확한 증인이 여기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상상의 힘을 잃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그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그의 상상을 모두 담지 못했을 정도다. 그가 남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그가 만들어 낸 등장인물은 그의 힘을 받아 살아 숨 쉰다. 독자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이 지켜본다. 그의 상상은 늘 우리 생각의 경계를 쉽게 넘기 때문에 숨죽이고 따라간다.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그의 세상에서 우리는 진짜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분명히 방법이 있다. 멈추지 않고 상상할 수 있는 비법이 어딘가에 있다. 중요한 것일수록 멀리 있지 않다. 아직 완벽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어본다. 남아있는 상상력의 불씨를 찾기 위해 오늘도 온몸과 마음을 헤집는다. 다시 날아오르고 투명해질 순간을 위해. 이번엔 더 멀리 더 은밀한 곳으로 가고 싶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Matilda> (Roald Dahl/PuffinBooks) - 2019 완독


읽는 내내 흥분과 긴장 속에서 즐거웠다. 왜 작가의 대표작인지 알 수 있었다. 다소 과장된 설정이 있기는 했지만 절묘한 풍자와 매력 넘치는 주인공, 기발한 마법이 어우러지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알면서도 기대되는 권선징악적 결론도 마음에 들었다. 뮤지컬 공연도 언젠가 한 번 꼭 보고 싶다. (작년 말 한국에서 꿈을 이뤘다!)


<The Witches> (Roald Dahl/PuffinBooks) - 2019 완독


그동안 읽었던 로알드 달 책과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던 책. 좀 더 으스스하면서 암울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다. 늘 있던 완벽한 해피엔딩도 없었다. 통쾌한 권선징악적인 부분도 물론 있지만 막 개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기발함과 전매특허인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은 대단했다. 이 작가의 한계가 궁금하다, 계속 읽고 싶어 진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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