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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08. 2023

"남자인데 집에서 애 봐요"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1화

‘뭐 하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일 쉬고 집에서 애 봐요’라고 대답하며 지낸다. 여성 질문자는 ‘아이가 참 좋겠어요’라고 하고, 남성 질문자는 움찔한다. 곧장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하며 잘못 들었나 싶어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처음엔 왜 이리 다른가 싶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생각을 고쳐먹지 못한 채 아빠로 지내지 못했던 올챙이 적을 떠올리며 이해하는 중이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복 덕분에 점점 익숙해지던 중, 색다른 반응을 접했다. "와, 나도 집에서 애 보고 살림하고 싶다. 얼마나 편할까?" 확실한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진짜로 부러워하는 속내가 아니었다. 어쩌다 팔자도 좋게 놀고 앉아 있냐는 비하를 꾹꾹 눌러 담은 말이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라서 더욱 놀랐다. 요즘엔 꼰대가 나이 상관없이 출몰 한다더니. 그가 나를 신기해하는 만큼 나도 그를 수십 년 만에 발견한 멸종위기종처럼 놀랍게 여겼다.


육아와 가사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로 생각하는 남자. 육아를 위해 휴직 중인 아빠가 마냥 부러워 보이는 게 당연하다. 집안일하고 아이를 길러내는 정성과 노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직접 해본 적도, 신경 써본 적도 없어서 모른다. 아는 게 없는데도 겸손하지 못하고 멋대로 집에 있는 사람을 편하게 노는 백수로 치부한다. 나도 한 번 일 좀 쉬고 집에서 몸과 마음 내려놓고 놀아보자고 투덜댄다. 밖에서 남의 돈 받으려고 하는 일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스트레스가 넘친다. 어떤 일이든 마냥 쉬운 일은 없다. 둘 다 해본 입장이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단지 한쪽만 경험하고 반대쪽을 폄하하는 짓은 위험하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만 힘들게 느낀다. 군대든 직장이든 만인이 고대하는 꿀보직조차 갖은 고생을 한다고 우기니까.


가정 살림과 육아도 다른 일처럼 세상에 없으면 안 되고 빠질 수 없다. 똑같이 대체 불가한 주부의 일에는 특이하게 직장인의 일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눈에 보이는 대가나 보수가 없다. 누구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 물론 돈과 비교할 바 없이 근사한 보람과 뿌듯함이 있다. 가족을 위해 집안을 돌아가게 만들고 아이를 돌보는 역할은 귀중하다. 한 푼도 손에 쥐어지지 않지만 인류 탄생 이래 끈끈하게 이어져 온 이유다. 괜찮다며 묻어둔 채 잊고 살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은 위의 젊은 꼰대 같은 무리가 던지는 무시다. '하는 거 없이 탱자탱자 노는 주제에 그것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단순히 물리적, 정신적으로만 괴로워서 힘든 게 아니다. 정말 힘든 점은 쓸모가 없다며 쏟아내는 무례한 시선을 견디는 데 있다. 급여가 없는 일이라서 가치도 함께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처음의 그는 모르고 말했다. 밖에서 하는 일의 힘듦이 주부의 그것보다 훨씬 커 보여서. 하지만 그는 놓친 게 있다. 바로 쉽게 뱉고 던지며 깔보는 말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힘듦을. 본인처럼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싸잡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을 감당해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테다. 시도 때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놀면서 애 보니 좋겠네'라는 지뢰가 사방에 깔린 무거운 안갯속에서 살아가는 험난한 일상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는 몰랐을 게 분명하다. 정상이라면 알고는 그럴 수 없으니. 우리가 일할 때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다. 나의 노력과 정성을 몰라줄 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무시당했을 때. 그때 쉽게 무너진다. 밖에서 하는 일은 돈이라는 숫자라도 남는다. 거지 같아서 못 해 먹겠지만 그걸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욕하고 버틴다. 주부에게는 그것도 없다. 없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더해 살을 후벼 파는 '너만 편하네?'라는 송곳이 찔러댄다.


그도 직접 해보면 이해할지 모른다. 지금은 아무 경험이 없어서 무지의 상태로 던지는 빈말일 테니. 쌉쌀한 이번 경험은 다시금 날 놀라게 했다. 아직도 잘못된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구나 싶어서. 내가 역할을 바꿔 살다 보니 세상이 다 변한 줄 알았다. 나의 일이 살림과 육아로 바뀌었지만, 전과 같이 충분한 보람과 성취를 누린다. 그러다가도 가끔 깔아뭉개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면 흔들린다. 단단해질 법도 한데 나도 모르게 '그러게. 돈도 못 벌고 혼자만 편하게 뭐 하는 거지?'라며 쭈그러든다. 주부의 고통은 하는 일에 있지 않다.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꿋꿋이 맡은 바를 해내는 어려움에 있다. 어디에나 필요하고 누구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쉽게 본다. 신기하게 안 해본 사람이 알지도 못하면서 꼭 그런다. 장담컨대 만약 자리를 바꾼다면 그들은 자기가 던진 말 한마디와 눈초리를 조금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밖에서 일해 버는 돈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크게 두고 있는 탓이다.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무보수의 자리에서 받는 빈정거림을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녹아버릴 테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들은 키워준 부모, 아쉽게도 아마 어머니 한 분에게 집중되었던 고생과 정성은 어떻게 여길까? 집에서 벌어지는 일에 별것이 있을 리 없다고 믿는 만큼 혼자서 저절로 컸다고 여기지 않으려나. 안에만 있는 사람이니 별다른 생산활동 없이 맨날 늘어져 있다고 기억에 새겨두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과 시선이 커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럴 확률이 높다. 진실의 왜곡은 부모를 향한 불효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 아내가 전업주부가 된다면 변함없이 굴 것이다. 내게 건넨 표정과 말투로 날카롭게 쏘아대며 살아갈 테다. "넌 집에서 애 보고 밥하느라 편하겠다. 난 밖에서 이 고생을 하는데." 오지 않을 과거가 아닌 예정된 미래라고 하니 소름이 돋는다. 이 사회는 어쩌다 이런 별종을 만들어낸 걸까. 애 낳고 키우는 게 지구상에서 가장 쉬우면서 최고로 가치 없다고 확신하는 슬픈 기적이 왜 벌어진 걸까?


어디선가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주부를 보면 잠시 멈춰보자. 방금 안에서 솟아난 생각이 내게 돌아온다고 입장을 바꿔보자. '나도 애나 보며 편하게 살고 싶네.'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던지려는 가시 돋친 말을 수도 없이 견디며 지내온 강하고 귀한 사람이다. 집안을 꾸려가는 직업의 특징은 편한 옷차림과 부스스한 머리 모양에 있지 않다. 당신이 하려던 깎아내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해나가겠다는 뚝심에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분의 힘겨운 감내로 세상에 나와서 자라 이 자리에 있다.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 표지 사진 출처 : 영화 '굿바이 싱글' (네이버 영화)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1화



<연재 배경>

작년 중순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책의 탄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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