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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23. 2024

왜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까?

<문명의 붕괴>

'지구가 아파요.'

'지구를 아껴요.'

'지구를 사랑해야 해요.'


어릴 적 학교에서 잊을만하면 그렸던 환경운동 포스터의 제목들이다. 주어진 주제라서 그렸을 뿐, 그림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림을 그린 날이 지나면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다시 그릴 날이 돌아오면 딱 하루만 쓰레기와 오염으로 힘들어하는 세상이 보였다. 남이 시켜서 돌아보는 자세는 진실한 행동의 변화를 주지 못했다. 정기적으로 주변이 아파하는 모습을 그리고 썼고, 다시 잊었다. 이것마저도 학교를 떠나면서 기회를 잃었다. 어른이 되어 이따금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은 자극적인 영상을 접할 때였다. 녹아가는 극지방의 얼음, 멸종되어 가는 동물, 돌이킬 수 없는 땅과 바다의 아픔. 물론 이것도 잠시를 넘지 않았다. 지구가 너무 커서 그런 건지 내가 너무 작아서 그런 건지 우리는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위기는 화면을 뛰어넘어 내게 다가올 수 없었다.


살면서 나 말고는 다른 것에 더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은 사람인 다른 이에게도 그럴진대, 동식물이나 환경은 우선순위가 낮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당연하고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이래 왔고 앞으로도 이럴 게 분명하다는 정해진 사실로 여기면서. 짧디짧은 인간의 수명 안에서는 그러기에 충분하다. 그 기간 안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 일은 희박하다. 후손을 떠올리라는 설득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내가 아닌 남이다. 편리한 지금의 생활을 바꿀 요인을 만들기엔 약한 동기다. 오늘 내가 살기 족한 방식을 쉽게 놓기 어렵다. 당장 내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기에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에 사로잡혀 사는 나는 아이러니하게 역사를 좋아한다. 과거에 사라진 그들의 이야기를 되짚어보는 게 흥미롭다. 일어날 수 없는 공상과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대의 일을 듣고 보고 이해하는 건 어쩐지 재미가 많다. 즐기면서도 왜 그곳에서 멈췄겠느냐는 의심은 쉬이 들지 않았다. 가벼운 유희로 들여다보는 옛날이야기라서 심각한 생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후대를 나와 떼어 놓은 마음처럼 선대도 나와는 별개의 일로만 여겼다. 평범한 나와 다른 위대한 인물은 여기에 집중했다. 사라진 옛날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해했다. 고귀한 이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는 지금의 우리를 위해 기록했다. 문명은 왜 사라졌고, 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우리도 계속 지구에 남아있고 싶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호소한다. 파헤치고 뒤돌아보는 과정에서 대가의 끈기와 노력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그들의 붕괴와 생존에 따로 의문을 품지 않았던 내겐 곳곳이 호기심으로 통통 튀었다. 정신없이 따라가면 우리에게 익숙한 종착점이 기다리고 있다. '지구가 아파요.', '지구를 아껴요.', '지구를 사랑해야 해요.' 돌고 돌아 이미 어렸을 적에 배운 그 이야기.


우리로 인해 생긴 어려움을 모른 척하며 우리는 간편하게 살아간다. 사라진 또 다른 우리를 보고 배워 다르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변화를 하나씩 해나가야만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단정한다. 새로운 부분이라기보다는 순수했던 학생 때 듣고 자란 것의 반복이다. 그때는 행동이 없었다. 이번엔 기회가 남았다. 나중에 책 속의 기록으로만 남을 우리가 될지 말지는 지금 우리에게 달렸다. 내가 속한 지금이 붕괴로 이어지는 순간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문명의 붕괴(COLLAPSE)' (재레드 다이아몬드/김영사) - 2020 완독

이 시대의 위대한 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이후 두 번째 책이다. 1998년도에 출간된 ‘총 균 쇠’를 2014년에 거의 1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 ‘문명의 붕괴’는 2005년에 출간되었고 올해 2020년에 1달 정도 걸려서 읽었다. 어찌 된 모양인지 늘 나는 저자의 책이 출간된 지 15년은 넘어야 읽는다. 읽는 속도는 나의 성장 때문인지 저자의 성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훨씬 수월했다. 저술 스타일에 익숙해져서일지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책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흔한 교훈,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배워 지금과 미래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함’, 결국 이것을 7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속에서 저자는 줄곧 말한다. 

내용 전에 저자의 작가로서의 훌륭함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는데 (번역의 탁월함까지 포함), 우선 전체적인 구성과 순서에 대해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로 잘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고, 성공했다. 문체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예시와 비유가 적절하다. 작가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려주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반대 입장에 대해 강하지만 조목조목 근거와 이유로 대응한다. 한마디로 읽기 재밌는 책이다(역사에 흥미가 없는 아내는 펴 보기도 싫게 생긴 책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대단한 끈기와 열정이 아니면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명을 모두 살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고르고 골랐다. 또한 흔히 착각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깨닫게 한다.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 개인에게 부탁한다. 개인의 행동 변화를 통해 우리의 세계, 지구를 보존시켜 나갈 수 있다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런 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 없고, 환경 캠페인 포스터 한번 안 그려본 사람이 없지만, 결국 성인 되어 살아가는 방식은 환경보다는 개인의 삶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읽는 내내, 또 읽고 나서도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깨달음과 지금의 무신경한 태도가 서로 멋쩍어했다. 마지막 인상 깊은 문장, ‘세계는 하나의 폴더이기 때문에 내 옆사람의 생존이 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가 깊숙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는지 가감 없이 알려주며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와 함께 희망도 함께 전하고 있다.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뭔 지구니, 세계니 가당치도 않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교양 삼아, 아니면 재미 삼아 이제는 사라진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읽어보길 권한다. 느끼는 바와 가슴에 남는 바가 모두 다르겠지만, 쓰레기를 버리거나 분리수거할 때, 물건이나 음식을 소비할 때, 더 나아가 투표할 때 환경을 한 번씩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면 저자의 목적은 달성된 게 아닐는지.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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