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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31. 2024

항마

9. 믿음의 배반

‘넌 내가 지켜줄게.’


선우는 자신의 가방을 다독이듯 톡톡 두드렸다. 쫀득이처럼 쫀득거리게 생긴 작은 생물체를 가방에 넣은 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같이 탐색을 나온 사람들은 많은 시체들을 상대했기에 이미 지쳐 보였다. 선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조금 멋쩍었지만, 그래도 한 생명체만큼은 어떻게 지켜냈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수상한 것이나 이상한 것이 있었다면 보고하라”


탐색팀의 리더가 말하였지만, 이미 두세 번 철저하게 확인한 터라 추가적인 보고는 없었다. 선우는 이 쫀득이를 이야기해야 하나 하고 잠시 망설였다가 행여나 자기가 찾은 이 귀여운 생명체를 어떻게 할까 봐 덜컥 겁이 나서 입을 다물었다. 가방이 떨고 있었다. 자신처럼 고립되는 감정을 누군가 다시 겪지 않기를 바랐기에 쫀득이가 들은 가방에 손을 넣어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


갑자기 손이 타는 듯한 감각이 일어났다. 뜨겁게 타오르는 고통으로 선우의 입에서 신음이 폭발해 나오던 때, 가방이 찢어지며 10m 크기의 뱀머리들이 한 군데로 뭉쳐진 괴물모습이 불을 뿜으며 모두를 공격했다. 서둘러 그 공격을 피한 사람도 있었지만, 반 이상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나머지 반의 반은 팔이나 다리가 타버리는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몸을 추슬렀던 대원들이 칼을 들어 괴물을 향해 돌진하며 자신이 가진 주술의 힘을 칼에 실었다. 괴물의 머리가 여러 갈레였던 탓에 오른쪽을 찌르면 왼쪽에서 공격하고, 앞에서 찌르면 뒤에서 불을 뿜어 냈다. 이러다간 모두가 전멸할 상황에 선우는 아직 멀쩡한 왼손으로 칼을 뽑았다. 누군가를 믿었으나 배반당했을 때의 심정이 되살아나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칼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공격의 기운을 눈치챈 괴물이 선우를 향해 불을 뿜었고, 불은 선우 사이로 두 갈래로 나뉘어 버렸다. 멀쩡하게 서 있는 선우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괴물. 선우는 그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칼을 들어 괴물을 향해 긋자,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괴물은 100조각으로 찢어 냈다. 높은 하늘에서 붉은 피를 토해 낸다.


피를 뒤집어쓴 선우.

선우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훑자, 그 피가 오른팔로 모여들더니 타서 문드러졌던 오른팔이 회복되었다. 피가 선우의 몸으로 흡수되자, 눈은 점차 황금빛과 붉은 빛이 합쳐진 오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선우이지만, 선우가 아닌 형태. 탐사대를 이끌었던 리더는 양손에 깊게 베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온힘을 다해 총을 꺼내 선우를 향해 쏘았다.


총알이 선우의 이마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서버린다. 선우의 눈동작 하나로 총알은 방향을 틀어 리더의 이마에 빠르게 박힌다. 얼굴의 형태가 사라진 리더의 몸. 그 피는 다시 선우에게로 흡수된다. 아무도 살아남지 않은 그 순간, 선우는 환영을 보게 된다. 자신이 태어나려는 때, 공격을 받고 어디론가 대피하는 모습. 그리고 모두가 죽어가는 장면들. 자신을 보호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광경을 처음으로 기억해 내며 선우의 몸이 흔들리더니 이내 몸에서 흐르던 붉은 기운이 사라지더니 쓰러지고 만다.


현수가 선우를 받아 낸다. 한발 늦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일단 선우를 살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피하려는 순간, 후발대들이 도착하고 현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선우를 포박한다. 모두를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래봤자 선우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한 현수는 입술을 세게 깨물다가 피가 흘러내렸다. 그 피 냄새에 잠시 의식을 찾은 선우가 현수를 바라보더니 손을 내민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의식을 잃어버린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수는 선우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누군가 선우를 죽게 할 바에야 자기 손으로 죽여 편안하게 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누구도 그녀를 헤치지 못하게, 마지막만큼은 그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현수는 자신의 방법으로 선우를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누구도 선우를 가둘 수 없다. 자기 자신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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