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과 외로움 사이
선우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몇 일 전에 선우가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통로 근처에 있는 마을이 습격을 당했다. 그 마을은 이곳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들을 노리고 그들을 무참히 처치해버린 것이 틀림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에서 악귀로 변하는 경우도 있고, 이 일을 일으킨 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다시 한번 조사가 필요했다. 선우는 자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다른 장로들은 반대하였다. 선우의 색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저도 함께 갈께요.”
“네가 중간에 다른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하지?”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냐고?”
“제가 알아야 할 게 있다고 들었어요.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네가 배반할 수도 있지. 동료의 등을 칠 수도 있는 것이고.”
“짐이 되지 않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듣던 최철수가 모두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턱을 쓸더니 입을 열었다.
“보내보도록 해보지.”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내가 보증하지. 나한테 들어야 할 것이 있으니 돌아올 것이야.”
선우는 최철수가 왜 자신을 믿어주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힘을 확인해볼 시간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래, 나의 능력을 확인해보고 비밀을 캐낸 다음에 떠나겠어.’
선우는 짐을 쌌다. 그 동안 나무 검을 통해서 훈련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진검과 총을 주었다.
“사람의 경우, 총을 쏘면 죽지만, 악령은 통과하지. 악령을 쏘려다가 사람이 맞으면 그거야 말로 재앙이야. 그래서 검을 먼저 사용한다네.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는 것처럼 분자를 원자로 돌려보내는 힘을 가진 검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사람에게도 동일하니 조심히 쓰도록 해. 그리고 절대로 그 어떤 악령도 믿지마. 걔네들은 가끔 엉뚱한 수를 쓰거든. 현혹되지말라는 말이야.“
선우는 진검과 총을 허리에 차고, 대원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이동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나무들이 촘촘히 둘러싸여있었으나, 그들이 이동할 때에는 나무들이 스스로 이동하며 여러 가지의 길로 안내하였고, 대원들은 그 길이 각각 어디로 안내하는지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앞으로 진입했다.
어느 새 밖으로 나온 그들은 피비린내가 나는 마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1. 혹시 모를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할 것, 2.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흔적을 조사할 것, 3. 악령으로 변화했거나, 악령이 남아있다면 퇴치할 것, 4. 인간이 결부되어있다면, 생포할 것이었다.
‘이런 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시체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코를 막지 않았다. 오직 선우만이 코와 입을 막을 뿐이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선우의 눈 앞은 점점 암흑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어질해 하니 리더가 잠시 앉아서 쉬어가도록 권유했다. 시체 사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잠시 앉았다. 같이 온 사람들의 형체가 점점 사라졌지만, 저곳에 같이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땅이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검을 들려고 하자, 눈이 동글동글하고 매끈한 물고기같이 생긴 동물이 선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동물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악령처럼 보이지 않았다. 손을 들어 보이니 손쪽으로 다가와 얼굴을 부빈다.
‘생존자가 있을 경우, 살려라.’란 지침이 있지 않았던가. 선우는 서둘러 자신의 가방에 그 동물을 넣었다. 조심스레 데려가 치료를 해줄 작정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물지었던 그 동물은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꼬물락꼬물락. 살아 있는 생명체가 온전히 자신에게 몸을 맡긴 것 같아 꼭 지켜주고 싶었다.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