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
철수라는 사람은 지금 선우가 지도 위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현세라는 곳은 산 속 깊히 자리잡고 있었고, 마을의 이름은 지도 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선우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철수는 고개를 젓는다.
"일단 몸부터 추스리지."
선우는 도대체 여기에 자신을 왜 가둔 것인지, 다 고발해버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우라는 사실을 어떻게 밝혀야 하는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소가 흘러나왔다. 현수는 그런 선우를 쳐다 보지도 않으며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선우는 이렇게 변해버린 현수가 진짜 자기가 알던 그일까?
"너 누구야?“
선우는 현수의 코 앞까지 얼굴을 드밀면서 추궁하기 시작하지만, 현수의 눈에서는 경멸어린 시선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현수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선우는 이내 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주변에는 자기를 키운 두 사람과 현수밖에 없었는데, 태어나서 생긴 부모님들은 어디에 계시는지도 모르고,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였던 현수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였다. 거기에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이 사람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꿈때문에 이미 지친 선우는 이 상황이 답답해서 달리고 싶었다. 무작정 뛰고 싶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힘을 실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현수가 어깨를 잡는다. 선우는 어깨에 올린 손을 내치며 현수를 노려본다.
밖으로 나가자, 최철수가 따라나온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지만, 산 속 깊은 곳이라 틈새로만 빛이 비추는 모습은 선우와는 다르게 평온했다. 이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간이장소인 듯 보였다. 빌딩이 들어서는 요즘에도 이런 집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지만, 선우에게 일어난 일도 기이해서 상황이 흡수가 되지 않았다.
"현세라는 곳은 밖에서 보이지 않아. 이곳의 연결고리는 목단꽃이 피어있는 곳이지. 몸을 먼저 추스리게. 그러면 아는 선에서 모든 걸 말해줄테니까."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망간들, 현수가 쫓아올테고, 다른 무리들이 더 있을 수도 있었기에 선우는 일단 힘을 정비하기로 했다. 몸의 힘을 되찾고 나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계속 머릿 속에 되뇌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힘을 되찾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