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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26. 2024

항마

4. 아침

선우가 눈을 떴을 때는 창문 틈으로 얇게 햇볕이 스며드는 아침이었다. 숲의 공기가 느껴졌고, 두 눈은 차가운 잎으로 가려져 있었다. 목에 언제나 느껴졌던 둔탁한 목걸이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향초의 냄새가 짙게 깔리는 낯선 곳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선우를 불편하게 했다.


"일어났습니까."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선우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옆에 있는 여자는 선우를 일으킬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향초의 개수를 늘려나가고 있는지 향기가 점점 짙어갔고, 그에 따라 선우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저 멀리서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향초의 냄새를 흩어버리지는 못한 채, 점점 진해지는 공기에 선우는 잠식되어 간다.


어둠 속의 선우는 혼자였다. 혼자인 선우는 암흑이 끝도 없이 펼쳐진 공간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바닥은 얕게 찰랑이는 물이 잔잔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어딘가 깊숙이 빠져들 것 같아 주위로 팔을 뻗어 보아도 잡을 곳이 없는 상태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이 있어서 선우는 그쪽을 향해 발길을 바꾸어 본다. 하지만 그곳에는 홀로 반사되고 있는 거울이었고, 그 암흑 속에서도 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가 자신의 모습을 만지려고 하자, 손이 빨려 들어간다. 놀랜 얼굴로 손을 밖으로 빼내자, 거울 속의 선우가 웃는다. 거울 밖의 선우는 뒷걸음을 치다가 바닥에 엎어지고, 거울 속의 선우가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모습을 정지된 상태로 쳐다본다.


"너는 나로구나."

"..."

"너는 그동안 나를 잘도 가두었구나."

"..."

"이제는 내가 나가야 할 차례인 것 같다."

"..."

"너에게 나를 막을 힘은 더 이상 없으니, 내게 손을 내밀던지 사라져."

"너는.. 나라며?"

"그렇지. 너는 나지. 하지만 나는 네가 아니지."


거울 속의 선우가 한 발씩 앞으로 다가왔고, 기어코 거울 밖으로 나와 쓰러져 있는 선우를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며 마지막 순간을 고하려고 할 때, 쓰러져 있던 선우는 주문을 외우던 또 다른 자신의 목을 짓이겼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눈알이 돌아가던 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선우는 더욱더 손아귀에 힘을 넣어 목 안으로 손가락이 파고들다가 주위가 하얗게 변한다.


"일어나세요."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은 여자의 얼굴은 이미 중년을 넘어선 모습으로, 스님이 입을만한 회색의 단조로운 한복형태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선우의 이마로 가져가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선우는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고개를 옆으로 내리자 아까 있었던 향초가 전부 꺼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잘 이겨냈어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니, 일단 일어나세요."

뭘 이겨냈는지 알 수 없던 선우는 목이 칼칼해서 일어나자 자신의 손톱 사이에 빨갛게 피가 껴있고, 손목에는 알 수 없는 작은 문신이 새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눈앞에 현수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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