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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17. 2024

항마

3. 습격 전-선우의 시점

눈을 떴을 때, 나의 이름은 선우라고 했다. 내 눈앞에는 두 분이 서 있었다. 낯설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같은 가까운 감정은 아니었다. 손이 닿으면 움츠러들고 마는 어색함과 부모도 아니면서 나를 보호하는 그들에 대한 감사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었어?”


그들은 내가 필요한 물품을 챙기면서 이 나이가 되면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 질문만큼은 언제나 얼버무리며 끝을 맺었다. 험악한 결말이라도 연이어 나올까 봐 깊게 물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부모라고 끝까지 속였다면, 기꺼이 믿어주었을 텐데, 그들은 들키고 말았다. 융통성 없는 그들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그 뒤엉킨 감각 속에서도 신뢰를 할 수 있었다.


산속에 오기 전의 일에 대해선 누군가 정밀하게 도려낸 것처럼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너무 어려서 그렇겠지.”라며 내뱉는 말 한마디가 외롭게 느껴지던 날, 현수를 만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는 언제나 일정했다.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같이 식사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잤다. 운동으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는데 특히나 물살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게 어려웠다. 영거 푸 물을 마시며 어느

정도 수영에 익숙해지고 다리에 힘이 생기며 조금씩 요령이 붙어 갔다. 산의 모양을 지도로 만들어 나가는 일도 했었는데, 각 위치마다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리고 돌기둥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곤 했다. 그렇지만, 배움이 커지고, 몸이 커질수록 친구에 대한 욕구도 커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현수는 그 분출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잠하게 만들어준 친구였다. 밭을 갈고, 단련을 하면서 거칠어준 손을 쓰다듬어주며, 이 손은 나중에 위대한 일을 할 거라며 덤덤히 말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발로 차 본 적도 있다. 그럴 때면 현수는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 서 있는 이는 현수가 맞다는 듯이.


깡패가 목을 죄어왔을 때, 이미 알았어야 했다. 말로 들어먹을 상대가 아니었고, 무서워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때에는 소중한 건 가릴 줄 알아야 했다. 목걸이가 목에서 없어지면 왜 안되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한 번, 딱 한 번, 목이 간지러워서 목걸이를 머리 위로 꺼내는 순간,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에는 두 손이 까맣게 타 있었다. 불로 지진 칼로 저미는 듯한 아픔에 소리를 질러야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 눈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뿜어 내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의 보호자들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읊고 있었고, 그들의 손 또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목걸이를 빼려다가 생겼던 일들을 바라보며, 행여나 소중한 사람들이 다칠까 나를 향한 칼인지도 모를 목걸이를 품었다.


그런데 이 깡패새끼가 그 목걸이를 끊어내려 한다. 손을 뻗어 저지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세상이

점점 어둡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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