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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3. 2024

항마

5. 아침2

선우는 현수가 손이라도 잡아줄 줄 알았지만,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가 더 짙어지고 선우의 눈길을 피하듯 선우를 바라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얼굴이었다. 현수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어서 현수의 이름을 부른다 한들, 현수가 따뜻하게 한마디라도 건네줄지 의문스러워서 선우는 선뜻 목소리를 실을 수 없었다. 낯선 상황에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자신이 답답하고 이 상황에 현수마저 남처럼 저 멀리 서 있는 모습이 꼴 보기가 싫어서 몸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이가 갈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 몸은 또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알 수도 없었는데, 이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선우는 순간 그 깡패들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것보다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자신을 키워준 부모라고 불리는 그들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해왔다. 여자가 건네준 물을 한 모금 마시자, 조금씩 입에 생기가 돌아오고, 갈라진 목소리지만, 목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기가 어디죠?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건가요? 지금 부모님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나요?"

목소리가 나오자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현수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둘이 나누는 대화는 적었다. 그냥 곁에 있어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형제 같은 존재였기에 이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선우는 스스로 놀라웠다.


"여긴 현세라는 곳이에요. 지금이 금요일이니 한 일주일이 되었군요. 그리고 나머지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죠."

선우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으스러지게 아픈 감각도 잊고 그녀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부모님들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냐고요."


그 순간 현수의 손이 선우의 팔을 잡아챈다. 그 손아귀의 힘이 대단해서 선우의 팔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손을 당장이라도 부러뜨릴 것처럼 자신의 팔을 뭉개고 있는 현수를 두려운 얼굴로 쳐다보니, 현수는 마치 혐오스러운 뭔가를 본 것처럼 치를 떨고 있었다.


누군가 현수의 어깨를 붙잡는다. 현수는 즉시 손아귀의 힘을 풀어 선우를 놓아준다. 선우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눈을 동그랗게 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다. 현수의 어깨를 붙잡았던 사람이 입을 연다.


"나는 최철수라고 하네. 현세라는 동네에 자네가 와있고. 이곳은 고향 같은 곳이지.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면 소화를 못 시킬 수 있어. 알고 싶은 건 많겠지만 차츰 알아가도록 하지."

최철수라는 사람은 선우의 머리 쪽에 손을 뻗더니 두 군데 정도 침을 놓는다. 선우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든다. 꿈속에서의 선우는 깡패의 목을 부여잡고 두 눈을 찔러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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