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밤낮으로 치료를 받은 선우는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몸과 정신이 불편하여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커보이는 안의 구조. 얼기설기 나무로 만들어진 집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1930년대의 실내처럼 곱게 잘려진 나무판자에 옻칠이 잘 입혀져서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선우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발을 슬리퍼에 넣는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가 보니 깊은 숲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주변은 나무와 푸른 풀들로 둘러져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서 내려다 본다면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내리깔린 짙은 안개는 산의 정상에서 보이는 그런 종류의 물안개였다. 어쩌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을 따라 내려가는 게 답일지도 모를 일이라고 선우는 생각했다. 현재로써는 이곳을 빠져나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 판단히 안서서 일단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바로 앞에 현수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현수를 보고 놀란 선우는 잠시 몸을 흔들거렸지만, 현수가 잡아주어 넘어지진 않았다.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우를 바라본다. 선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 것도 쳐다보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현수는 똑바로 응시한다. 선우는 고개를 떨구어 현수의 시선을 피한다. 별로 할 말도 없었지만 이젠 지쳤다. 말을 걸고 싶지도 않아 그렇게 땅바닥을 바라본 채 자신의 방으로 선우는 들어간다. 현수는 따라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를 감시하는 걸까?'
선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것이 자발적인지 타발적인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발적이라면 괘씸했고, 타발적이라면 그 배경이유를 알고 싶었다. 벌떡 자리에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최철수가 서있었다. 그는 선우에게 일정이 잡혔다면서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서 말하였다.
"이제부터 수련을 하게 될꺼야. 기본적인 체력은 갖춘 듯 하지만, 기초체력을 더 높이기 위한 훈련을 일단 시작하고, 그 뒤에는 인간과 싸우는 방법, 그리고 인간이 아닌 자와 싸우는 방법과 자신을 돌아보는 내면세계에 대해 공부를 할꺼야."
일단은 신뢰를 얻자 생각했고, 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훈련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야 여기를 빠져나가서 자기를 걱정하던, 자신을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키워준 후천적 부모님께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현수마저 저런 상태인데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선우는 한기가 느껴져 이불로 몸을 감쌌다.
아침 기상시간은 새벽 6시였다. 완벽하게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어서 컨디션이 가뿐한 것은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무릎이 저려왔지만, 맑은 공기가 코끝을 맴돌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주변을 달리면서 산의 생김새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샘물을 뛰어 넘으며 조금씩 체력이 향상됨을 느꼈다. 처음에는 한바퀴만 돌아도 힘들던게 이제는 세 바퀴를 돌아도 멀쩡했다. 체력이 올라오면서 대련훈련을 하는데, 선우보다 월등히 먼저 시작한 그들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뺨을 주먹으로 맞고 배를 강타당하고 다리에 멍이 들었다. 선우는 억울하고 아팠지만, 우습게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혀에 난 피를 목구멍으로 넘기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현수에게 대련연습의 대상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선우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리안이라고 했다. 리안은 그 클래스에 있는 훈련생가운데서도 탑급이었는데, 선우에게 살가웠다. 수업마다 옆에 앉았으며, 모르는 것은 두 번 세 번 설명해주었다. 과외수업을 해준 것도 그녀였다. 리안에게 얻어터져가며 배운 결과, 선우는 처음으로 남학생과의 경기에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물론 피해도 컸다. 내장이 엉킨 듯한 고통이 뒤따르고 갈비뼈에 금이 이갔지만 참을만 했다. 승리의 기쁨이 더 컸다. 이제 나가더라도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