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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n 21. 2024

항마: 악몽

악몽

뭔가 잘못 먹은 것처럼 속이 얹힌 기분이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감정이 동하지 않았던 태완은 답답한 마음에 와이셔츠의 윗쪽 단추를 하나 풀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손목을 잡던 그녀를 보며,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물었다.


“너 누구야?”


여자는 의식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듯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태완이가 잠들면 찾아왔던 그 악몽이 그녀에게로 옮겨간 것일까. 자신의 비밀을 아는 것 같은 그녀를 그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아서 데려왔지만, 의사까지 불러서 케어해주고 있는데 건방진 태도라니.지금 뭘 하고 있나 싶어서 그녀를 폐기시켜버릴까했는데 그녀의 눈물 속에 있는 이야기에 다시 배팅을 걸어보기로 했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자신에게 끼친 목걸이의 영향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태완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손으로 닦어낸다. 손바닥을 따라 얼굴을 파묻는 선우. 태완은 그녀의 볼을 그대로 자신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베개로 이동시키며 비서에게 말했다.


“이 여자에 관련된 것, 금요일까지 다 찾아.”

“…”


오늘은 수요일. 비서는 이틀 안에 모든 걸 찾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려다가 한번 결심하면 어떻게든 밀어부치고야 마는 성격인 태완이기에 그냥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비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어둠에서 활동하는 이에게 부탁해야겠다 생각해서 김경배에게 연락했다. 그는 유능했지만, 오직 밤에만 활동을 했고, 그와 안좋게 얽히면 모두들 각자 신체의 일부분을 그 댓가로 바쳐야만 했기에 평판이 좋고도 나뻤다. 그와의 거래가 지저분해지면 피곤해질 것이 분명하였지만, 급한 상황이니 일단 의뢰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마음에 안들면 김경배가 날뛰기 전에 두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태완이었으니깐.


“한 여자에 대한 과거를 알아내고자 합니다.“

“난 좀 바뻐서 이만 끊겠네.”

“목걸이를 찾는다고 하셨죠?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뢰를 맡지.”


비서는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김경배에게 전송하고는, 오늘 해야할 일에 대한 브리핑을 위해 태완과 함께 1층에 있는 그의 서재로 이동했다. 서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글로 적혀 있는 책과 고서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고, 한켠에는 값비싼 보드카가 하나 뜯어진 채로 반이 남아 있었다. 얼음을 띄우고 보드카를 따르며 비서에게 건네는 태완.


“오늘은 간단하게 끝내도록 하지.”


원래부터 구구절절 보고하는 걸 싫어하는 태완이었지만, 대강 일을 끝내는 법은 없었다. 그가 잠이라도 청하려는 것처럼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 개 더 풀어내는 모습을 보곤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놀래고 말았는데, 비서가 아는 한 태완은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보통 악몽을 꾸기 때문에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그의 개인적인 방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비서로서는 잠을 거의 못자도 저 정도 몸과 정신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흐르는 정적.


태완이 자리에 앉아 보드카를 한모금 들이키더니 그를 쳐다 본다. 아무 감정도 서려 있지 않은 차가운 눈빛. 비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간단히 브리핑을 끝내고 더 이상의 지시가 없자 자리를 물러 나갔다. 태완은 허리띠를 풀고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려고 하고 있었다. 벌써 아침이 된 것이다. 노곤하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막상 잠에 들면 다시 그 끔찍한 악몽들이 자신의 숨을 앗아가려고 할 수도 있지만. 보드카잔을 책상 위에 두고 잠시 눈을 감아 본다.


꿈속의 태완은 언제나 화염 속과 같은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피부가 타는 경험을 했다. 뜨거움이 지나가고 나면 누군가가 자신의 머릿속을 파내는 느낌이 들었고, 언제나 비명을 질렀다. 어떤 기억인지 알 수가 없지만, 누군가 겪었던 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꿈 속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왔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 죽여버릴꺼야.’


손가락을 움직여보려했지만, 눈알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몸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눈알마저 도려내지는 순간에는 항상 잠에서 깼다. 꿈 속의 고통이 현실처럼 또렷할 수 있다니.


그런 꿈은 지옥과 같아서 잠을 피하다보니 불면증이 생겼고, 오랜만에 잠에 든다고 해도 악몽은 언제나 따라왔다. 그런데 목걸이 소유한 이유로 악몽이 없었고, 지금도 태완의 손목에는 부적처럼 목걸이를 감고 있었다. 꿈이 사라진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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