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belbyme Sep 06. 2022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40대

구토: 장폴샤르트르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지면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경험으로 자신이 한껏 팽창하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도 그들에겐 아이들이 있어서, 혹은 직원이 있어서 경험을 즉석에서 소비하게 만든다. 40 넘은 사람은 그들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그들의 추억은 압축되어 부드럽고 달콤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얼마나 편리한 과거인가!! 그들은 옛것을 가지고 새것을 설명한다. 결국 이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두려울 뿐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려 할 때, 그것 앞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선다. 모든 과거는 아무 소용도 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것은 사라져 버리고, 우리가 이해한 것도 그것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위에 구절은 장 폴 샤르트르에 구토에 나오는 구절을 조금 수정한 내용이다. 구토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위에 나오는 구절이 구토를 읽고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인 왜 주인공은 갑자기 구토를 느끼는 가에 대한 답도 아니다. 책을 읽을 때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엽적이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문구나 생각을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경험했던 것에 의미를 많이 둔다. 과거 경험이 마치 어떤 물질처럼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실체가 있어서 경험으로 못을 박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버그가 있는 소프트웨어에 과거 경험을 설치하면 버그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샤르트르는 과거 경험은 거기서 끝나버린 실체가 없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경험을 고집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무리 옆에서 누가 설명을 해주어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당사자 본인이다. 그 이해 자체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해줄 수는 없다. 새로운 것을 이해할 때 사람은 혼자이다. 혼자 이해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두려워한다. 혼자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과거에 의존한다. 틀린 비번을 여러 번 입력해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과거를 자꾸 새로운 현실에 꾸겨서 넣는다. 농사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경험이라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그래서 경험을 공유하고 말하는 것이 큰 미덕처럼 여겨진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사람은 실제로 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쌀은 마트에 있는 것이지 논에 있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산업화된 부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시대의 가치를 이용해 자신의 경험의 가치를 부풀린다. 


샤르트르가 말했던 것처럼 이런 경향은 40에 가까워지면 우리 머릿속에 온갖 왜곡된 기억으로 채워지고, 경험이라는 이쁜 단어로 포장에서 남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구토의 이 구절을 읽고 나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았다.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 나는 확실히 더 재미난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사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책을 더 읽어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두려움 없이 이해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낫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 04화 몇 시에 잠들었는지 알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