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송 시론
어제 나는 몇 시에 잠들었을까? 단순한 질문이다. 답을 쉽게 할 수 없다. 자기 위해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어떨 때는 빠르게 내가 의도하지 않던 꿈과 같은 상상이 펼쳐진다. 그러다 의식이 사라진다. 잠들었다는 것은 어떤 한순간이 아니다. 이런 과정 즉 연속성을 가지는 행위다.
앙리 베르그송이 비판하는 것이 바로 수량화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측정하고, 계산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삶의 태도가 되었다. 많은 사고와 질문이 순간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어제 친구 몇 시에 만났어? 친구를 만나는 것은 잠드는 것처럼 지속이다. 내가 약속 장소에 가고, 친구가 멀리서 오고, 나는 친구를 본다. 이 모든 과정이 친구를 만나는 지속이다.
박스 안에 사과가 있다. 사과라고 일반화를 하지만 그 사과 하나하나는 조금씩 다르다. 숫자를 세기 위해 차이가 있는 사과를 일반화한다. 일반화가 끝나면 다시 1개 사과로 분리화를 시킨다. 숫자를 계량화를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반화와 분리화가 필요하다. 일반화와 분리화가 진행 후 한 시점에 한 개의 사과가 대칭된다. 한 시점에 한 사과가 대칭되므로 전체 숫자를 세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한 시점에 1개의 사과를 인식한 후 우리 사고 속에 가상의 공간이 있어야만 1개의 사과가 저장되어 다음 순간에 센 2번째 사과와 더해져 2개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숫자를 세기 위해서는 이처럼 많은 정신적 가공 단계가 필요하며 각 가공은 현실을 왜곡한다.
순간이 모여 삶이 된다. 그렇지만 순간 자체가 삶은 아니다. 순간 자체가 삶은 아니지만 우리는 순간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 답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연봉 5,000에 워라벨이 좋은 회사로 이직할까요? 아니면 연봉은 6,000으로 높지만 업무 강도가 높은 곳이 낫을까요?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연봉 5,000을 받는 순간만을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업무 강도가 매 순간 높지 않을 것이며 연봉이 낮은 업무도 워라벨이 깨지는 순간이 금방 올 수 있다.
수량화를 위한 일반화, 가상화 과정은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은 있지만 수량화의 한 시점이 현실은 아니다. 베르그송은 계산되는 한 시점이 아닌 지속되는 삶이 우리의 삶을 더 잘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