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워싱턴 시간여행
설날, 워싱턴 DC 차이나타운
영하의 날씨에 매서운 바람까지 불어 닥친 설날 (2007. 2.18) 오후 워싱턴 DC의 도심 H 스트리트, 차이나타운.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도로에 얼어붙었는데도 차이나타운 거리에는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물론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모든 인종의 사람들로 넘쳐났다.
특히 높이 18미터의 ‘Friendship Archway’를 중심으로 한 사거리가 더욱 붐볐다. 한자로 중국성(中國城)이라고 적힌 ‘Friendship Archway’는 워싱턴 DC 당국이 베이징 시 당국과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지난 86년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7000개의 붉고 노란 타일과 272마리의 용으로 장식돼 있는 명-청 시대 스타일의 이 문은 Alfred H. Liu라는 건축가가 만들었다고 한다.
추운 날씨 탓에 중무장한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이 많은 백인 할머니까지, 모두 음력 설 행사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윽고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워싱턴에서 자리 잡은 중국 화교들이 선두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눈에 띄는 건 이들이 들고 있는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 타이완의 국기였다. 미국이 중국과 핑퐁외교를 통해 관계를 개선한 지 35년이 됐지만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이징 시 당국과의 우정을 위해 만든 ‘Friendship Archway’아래에 오성홍기 대신 청천백일기만이 나부끼는 건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그만큼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여전히 타이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1930년대 중국 이민자들이 워싱턴 DC에 처음 정착할 땐 대부분이 이른바 ‘하나의 중국’에서 왔겠지만 말이다.
차이나타운 퍼레이드의 백미는 아무래도 사자춤이다. 황비홍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날렵한 움직임을 자랑하며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기다란 용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도 빠지지 않았다.
이번 음력 설맞이 퍼레이드를 안내하는 워싱턴 DC 당국의 홈페이지를 보면 올해가 중국력으로 4705년, 돼지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돼지해에 태어난 사람은 따뜻하고 친절하면서도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해 내는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런 설명 탓일까? 거리 노점상에서는 분홍색 돼지 인형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퍼레이드 마지막은 워싱턴 DC 남동쪽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밴드부가 장식했다. 중국과 미국의 우호를 증진시키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밴드부 전원이 흑인학생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 DC 전체인구 57만명 가운데 흑인이 60%인 34만명을 차지한다는 2000년의 인구 센서스가 실감났다. 참고로 워싱턴 DC의 아시아인은 1만5천명, 약 3%로 중국인-베트남인-한국인 순이라고 한다.
해마다 차이나타운에서 거행되는 음력 설 퍼레이드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올해 39살인 Kristina Lew라는 중국 여성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9살과 13살 난 자기 아이들이 처음엔 단순한 재미 차원이었는데 자랄수록 점점 더 전통에 대해 생각하면서 퍼레이드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음력 설 퍼레이드를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T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