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③] 순천 송광사 고향수(枯香樹)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아름다운 우리 가곡 「가고파」「사랑」「성불사의 밤」등을 지은 시조시인이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구금되기도 했던 노산 이은상(1903~1982)선생이 송광사 인암 스님과 시조 대결을 펼친다.
노산 선생의 싯구에 인암 스님은 이렇게 화답한다.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죽은 듯 산 듯' 홀로 우뚝 솟은 오묘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불생불멸’을 보여주는 약 10미터 높이의 ‘고향수(枯香樹).
“마른 나무에 푸른 잎 돋아 님도 오시길 바라는” 시조대결의 소재 고향수(枯香樹)는 고려시대 1197년 송광사를 찾은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팡이였다.
지눌스님은 고려 무신의 난 이후 혼란한 시국을 비판하고, 깨달음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 ‘정혜결사 운동’을 펼친 분이다.
‘마음을 닦는 선정과 사물의 전모를 파악하는 지혜가 분리될 수 없다’며 당시 승려들의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승려의 승려다움을 외치며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보조국사 지눌스님 덕분일까?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맥을 잇고, 수행하는 스님을 최고의 보배로 삼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불교를 바로잡은 지눌 스님은 향기 나는 지팡이를 꽂아두고 어디로 가셨을까?
지팡이는 스님들의 수행 열기가 높아지면서 나무로 살아나 잎과 가지가 무성하게 자랐다가 지눌스님이 입적하자 말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8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꼿꼿한 자세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고향수(枯香樹)옆에 능허교(凌虛橋)와 우화각(羽化閣)이 자리잡은 게 예사롭지 않아 순례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허공을 오르는’ 다리를 딛고 ‘날개가 돋는’ 누각에 머물다가 신선이 되어 홀연히 떠나셨나?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爾我同生死)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我謝爾亦然)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會看爾靑葉)
나도 그런 줄 알아라(方知我亦然)』
향기 나는 지팡이를 꽂으면서 남긴 지눌스님의 시는 ‘만나면 헤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이치를 친히 설파하는 것 같다. ///T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