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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Jul 05. 2024

무쇠솥 쓰다듬고 미륵불에 소원 빌고

[순례노트④]김제 금산사 미륵불

56억년과 270억 명. 천문학적인 숫자다.


미륵불이 나타날 시기와 용화수 아래 3차례 설법(용화지회)으로 구원할 중생들 규모다.      


지구 나이가 45억년인데, 그보다 휠씬 긴 시간 뒤에 구세주 미륵불이 과연 올 수는 있을까?  혹시 다른 차원에서 시간을 뛰어넘으면 모를까.


미륵불은 불교 우주관에 의하면 28개 하늘(28天) 가운데 하나인 도솔천의 내원에 거주하고, 바깥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정토란다.     


은하만 1천억 개가 넘는 광대한 우주가 11개의 차원으로 구성됐다는 초끈이론과 다중우주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28개 하늘을 가진 불교 28천과 11차원의 우주? 서로 닮은  꼴인가?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재앙적 상황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빛보다 빨리 이동해 강림한다는 SF소설 같은 플롯을 미륵불과 도솔천에 비유하면 발칙한 상상일까?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한국 미륵신앙의 산실은 김제 금산사다. 


높이 19미터, 측면은 15미터가 넘는 3개 층의 미륵전은 대자보전(大慈寶殿),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편액을 층층마다 걸었다.     

 

미륵은 산스크리트어의 Maitreya를 발음대로 한자로 옮겨 적은 말인데, ‘자애가 어려있다‘는 뜻을 품고 있어 자씨慈氏라고 의역한다. 용화지회는 미륵불의 설법 모임을 의미하니, 이 건물은 온통 미륵신앙이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규모의 미륵전과 10미터 규모의 거대한 미륵불을 조성한 이는 진표율사다.      

금산사 조사전에 있는 진표율사 진영

진표 율사는 ‘부사의방(不思議房)‘이라는  백척간두의 바위에서 돌로 자기 몸과 머리를 찧는 극한의 수행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미륵불로부터 점찰경이라는 불경도 받았다고 한다. 미륵신앙을 설파할 정통성을 획득했다고나 할까?


계율을 준수하고 참회하며, 살생과 도둑질 같은 나쁜 일 열 가지를 멀리하면 미륵불이 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은 민중 사이로 널리 퍼졌다.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 받는 민중은 구세주 미륵불의 도래를 꿈꾸었고,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이들은 미륵신앙을 혁명과 반란의 동력으로 삼기도 했다.     

높이 12미터의 석고미륵여래입상과 좌우 협시불

진표율사는 연못을 참숯으로 메운 뒤 미륵전 터를 닦고, 무거운 무쇠로 좌대를 만들어 그 위에 미륵대불을 올려 766년 완성했다. 좌대에는 당초 연꽃 문양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꽃은 떨어져 나가고 솥 형태로 변형됐다고 한다.


좌대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미륵부처가 자비를 베푼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와, 지금도 순례자들이 공양미를 올리고 솥을 쓰다듬으며 기도하기도 한다.      

금산사 미륵대불 좌대

정유재란때 전소됐다 다시 조성된 중앙의 미륵불상은 1935년 큰 화재로 손상돼 근대 조각가 김복진이 ‘새로운 재료’인 석고를 이용해 전통을 계승한 높이 12미터 미륵대불을 새로 만들었단다.     


그런데 화재의 원인이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이 시줏돈을 전부 무쇠솥 안에 넣었는데, 이걸 꺼내는 일을 맡았던 동자승이 촛불을 들고 작업을 하다 그만 실수로 불을 냈다는 거다.     

1935년 화재 전 미륵전 미륵보살 (출처:금산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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