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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Jul 19. 2024

돌아온 부처님…‘뿌리 얽힌’ 인연

[순례노트⑥]대흥사 천불전과 초의선사

“흥미로운 절” 대흥사엔 흥미로운 사연이 전해지는 천불전이 있다.     


1811년 소실됐다 1813년 재건한 천불전에는 옥돌로 만든 일천 부처님, 천불이 모셔져 있다. 전각을 가득채운 천불은 언제 어느 곳이든 부처님이 계시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내부 모습

그런데 천불전이 완전히 차림새를 갖추는데 6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높이 25㎝의 천불이 1817년 경주에서 제작이 끝나자 2척의 배로 운송했다. 그런데 배 한척이 풍랑을 만나 일본 나가사키까지 표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이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 하자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며 부처님이 여러 차례 꿈에 나타나자 일본 현감이 1818년 7월 대흥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당시 아쉬웠던 일본은 불상 밑면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을 모시게 된 천불전. 상량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본디 세상의 가장 참됨은 허허로운 고요함이고 우주의 근본 원리는 색상의 끝자락에 가닿고,현묘한 도리는 깊고 은미하며 뜻은 이미 이름 지어진 말들의 표현을 빌려 나타낸다.」

<한승원, 『초의1』, 열림원, 2023, p.268>

해남 대흥사 천불전 천장 문양

알 듯 모를 듯한 상량문을 적은 사람은 초의선사(1786~1866)다.    

  

추사의 ‘평생의 벗’인 초의선사는 범패와 서예에 능한 데다 불교 지식은 물론 유학, 도교 같은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다.


또 조선 후기 실학자와 문인, 사상가를 씨줄-날줄처럼 맺어준 한국 지성사의 허브 혹은 매개 역할도 했다.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 동상

'호남화단의 실질적 종조(宗祖)'라 불리는 소치 허련(1808~1893)은 초의로부터 인문적 소양과 화법의 기초를 배우고, 초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된다.      


선문(禪門) 중흥의 종주로 여겨지는 백파 스님(1767~1852)과의 '선 논쟁'도 주목받는다. 당초 이 논쟁은 추사와 백파가 서찰로 주고받은 논쟁이 시작이었다.


「“경전 공부를 앞세우며 선승의 깨달음 얻는 방식을 숫제 무시하는”」추사와 「“금석학은 미련한 자에게 해주는 꿈 이야기”」라는 백파의 첨예한 입장을 조율하면서 초의 만의 사상을 구축했다고 한다.   


논쟁의 한 축인 추사는 뒷날 선운사 ‘화엄종주 백파대율사비’의 비문을 직접 쓰며 사상적으로 화해한다.  

대흥사 일지암 초정. 초의선사가 유명한 '동다송'을 펴낸 곳이다.(출처:대흥사 홈페이지)

초의가 맺은 인연 최고봉은 단연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초이는 유교와 불교, 주역 같은 학문에 종횡무진 정진하는 다산을 스승처럼 또 할아버지처럼 섬겼다. 다산에게 유학과 실학을 배웠고 글과 문장을 익혔다.    

  

다산은 초의의 마음이 「"아무나 신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기만 하면 건널 수 있는 여울이 아니다.”」라며 존중했다. 24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지적 교류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 좋은 사례가 두 사람 덕분에 부흥한 한국 다도 문화다.


손수 판 샘물로 차를 끓이며 연구해 ‘각다고’라는 글을 남긴 다산과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강조한 초의의 교류는 전통 다도 문화를 수립한 원동력이었다.

 대흥사 경내에 있는 500년 된 느티나무의 연리근

대흥사 경내에는 높이 20m, 둘레 4m의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굵은 뿌리가 서로 얽혀 한 몸처럼 보이는 데, 당대의 실학자, 문인, 사상가와 널리 교류한 초의 선사의 깊은 인연을 그대로 웅변하는 듯 하다.                                    ///TOK///     


**주)

이 글 중에서 꺾쇠「 」속 인용문장은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장편소설「초의 1,2」(열림원,2023)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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