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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Aug 02. 2024

‘화엄 뜨락’ 점지한 뛰어난 그 한국인

[순례노트⑧] 영주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

가을빛 좋은 날에 부석사에 가면 사과 향기가 가득하다.


빼곡한 사과나무와 사과 값을 흥정하는 농부들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지나면 세월의 품격이 느껴지는 건물에 다다른다. 위에는 ‘부석사’ 아래엔 ‘안양문’이라고 적힌 현판이 선명하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 위에는 부석사 아래엔 안양문 현판이 보인다.

안양문 아래 계단을 고개 숙여 올라가다보니 느닷없이 전설적 록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불쑥 머릿속에 떠오른다.     


"신비로운 세상. 서쪽 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느끼는 것이 있어요......   

당신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속삭이는 바람 속에 계단이 있는 걸......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안양문을 지나면 석등과 무량수전이 나타난다.(출처:부석사 홈페이지)

레드 제플린이 불교 사상에 심취했나?


불교에서 안양(安養)은 평안하고 자유로운 세계 곧 ‘서방정토’로 통하는 데, 안양문을 지나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다보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안양루에 오르면 김삿갓의 시 ‘부석사’ 편액 뒤로 우리 산하가 펼쳐진다.


조선 후기, 풍자와 해학으로 지배층을 조롱하고 백성에겐 카타르시스를 준 김삿갓. 안양루에선 기름기 쫙 빼고 진지하게 삶을 반추한다.   

안양루 '부석사'시 현판 뒤 펼쳐진 풍경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平生未暇踏名區)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白首今登安養樓)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江山似畵東南列)

천지는 부평 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天地如萍日夜浮)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風塵萬事忽忽馬)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宇宙一身泛泛鳧)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장관 보겠는가(百年幾得看勝景)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歲月無情老丈夫)」< 김삿갓, 「부석사」>    


불교도들은 희노애락의 삶도 가치 있지만 윤회를 끊어내고 지극한 즐거움이 존재하는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한다. 늘그막의 김삿갓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무량수전 앞 석등 네모난 공간으로 본 무랑수전 편액

안양루 바로 앞에는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광명을 담고 있는 공간 ‘무량수전’이 있다.


많은 순례자들은 부처님의 자비를 기원할 뿐만 아니라 무량수전의 멋과 향취에 푹 빠져있다. 너도나도 배흘림기둥에 서서 찰나의 순간을 영원의 시간으로 캡처하기도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순례객들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이 찾았을 땐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었는데<최순우,2014>


이렇게 많은 순례객이 찾아 기뻐하고 또 멋을 즐길 지 예상이나 했을까?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최순우 선생의 보배로운 문장이 만든 선한 영향력이다.     


「무량수전 · 안양루 · 조사당 · 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14, p.271>  

비껴서서 바라본 부석사 무량수전

‘한국미의 파수꾼’ 혜곡 최순우 선생 덕분에 우리 국민 대다수가 국가 유산을 보고 아끼고 즐길 줄 아는 안목을 갖게 됐고, 천 년의 아름다움과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무엇 하나 홀로 있지 않고, 대립을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하는’ 화엄세상의 뜨락에서 최순우 선생의 문장은 이 모든 것의 시원(始原)인 그 한국인을 향해 뻗어간다.     

가을 부석사에서 바라본 우리 산하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 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마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14, p.273>   

부석사 가을 단풍과 소백산맥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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