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⑨] 합천 해인사 쌍둥이 부처님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
‘해인사’라는 명칭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했단다. 부처님의 깨달음, 중생의 번뇌가 멈추는 경지같은 자세한 설명이 뒤따르지만, 유독 이 표현이 머릿속에 박힌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선조들의 마음가짐이 그랬을까?
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데 부처님 한 분의 얼굴이 문 사이로 빼꼼 드러난다.
그런데 바로 옆에 똑같이 생긴 부처님이 한 분 더 보이는 게 아닌가? 부처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게 불상이니, 비슷하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두 부처님, 닮아도 너무 닮았다. 얼굴과 크기 등등 마치 쌍둥이 같다.
찾아보니 해인사에서도 ‘동형쌍불’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웬 쌍둥이 부처님?
게다가 전각 앞 ‘일존진성 일존위’라는 문구가 쌍둥이 부처님에 대한 호기심을 더 불러일으킨다.
9세기 후반 신라 마지막 왕에 오른 진성여왕은 정치적 혼란에,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 도적떼는 창궐하는데, 나랏일을 돌보기는커녕 신하이자 숙부인 각간 위홍과 ‘애정행각’을 벌였다며 지탄을 받는 인물이다.
‘일존진성’은 진성여왕을, ‘일존위’는 각간 위홍을 나타낸 것이다. 특히 진성여왕은 숙부를 사랑한 조카딸이었기에 후대 대중문화에서는 악녀의 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애정행각’이 아닌 ‘러브 스토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라 말, 개혁을 외면하는 기득권 때문에 정치적 혼란이 생겼고 지방호족의 득세에, 당대 최고의 석학인 최치원의 ‘시무 10조’를 수용해 개혁에 나섰으나 기울어진 나라를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것이다.
풍전등화의 시기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숙부와 ‘러브 스토리’가 싹 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골품제 사회인 신라에선 근친결혼은 일종의 노말(Normal) 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러브라인의 한 축인 각간 위홍이 죽자 진성여왕은 왕위에서 물러나 해인사 근처에서 머물다 30세 초반의 나이로 숨졌다.
극단의 평가를 받는 여왕의 로맨스는 2005년 다시 수면위로 오른다.
2005년 당시엔 쌍둥이 불상이 법보전과 대적광전 두 곳에 따로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조선시대 불상 정도로 파악했단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법보전 불상의 금박 작업 중 나온 내부 유물이 ‘여왕의 로맨스’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신라 말기인 883년에 조성했다는 글씨가 나오고 ‘대각간의 등신불과 오른편에 부인의 등신불을 2위 만드노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문장도 적혀 있었다.
이후 17년간의 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법보전과 대적광전의 불상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미국의 유명 연구소에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을 벌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법보전 불상을 만든 목재의 연대는 772~978년으로, 대적광전 불상은 706~944년으로 나타난 것이다.
800년대 말에 조성돼 ‘천년의 사랑’을 담고 있는 쌍둥이 부처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목조불상으로 인정받아 2022년 10월 국보 2022-3호와 2022-4호로 지정됐다.
과학으로 확인한 쌍둥이 부처님 사연을 당사자인 진성여왕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시에도 힘들게 하더니 천년 뒤에도 영 못 미더워 한다고 타박할까? 아니면 과학의 힘으로 그나마 자신의 사랑을 확인해 줘 감사하다고 할까? ///T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