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⑪] 백범 김구와 공주 마곡사
2015년 12월 11일 오전 10시 40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남북 회담 대표단이 마주 앉았다.
대한민국 황부기 수석대표가 북한 대표에게 한시 ‘야설(野雪)’의 풀이로 말문을 연다.
“들판에 눈이 내리면 걸을 때 갈지 자로 걷지 말고 서로 잘 걸어가라는 의미”라며 “처음 길을 걸어갈 때 온전하게 잘 걸어 통일로 가는 큰 길을 열자”고 말했다.
회담장에서 종종 인용되는 ‘야설(野雪)’은 백범 김구(1876~1949)의 애송시로 잘 알려져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踏雪野中去)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
백범 김구 선생은 20세때인 1896년 명성황후 시해 공범으로 보이는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다.
이후 사형수가 된 뒤 탈옥해 ‘삼남지방’을 다니다가 1898년 공주 마곡사를 찾는다.
“마곡사 앞고개에 올라선 때는 벌써 황혼이었다. 산에 가득 단풍이 누릇 불긋하여 「遊子悲秋風(유자비추풍)」의 감회를 깊게 하였다. 마곡사는 저녁 안개에 잠겨 있어서 풍진에 더럽힌 우리의 눈을 피하는 듯하였다.
뎅~뎅~ 인경이 울려온다. 저녁 예불을 아뢰는 소리다. 일제 번뇌를 버리라 하는 것 같이 들렸다.” <김구,『초판본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지식인하우스, 2016, p.142>
마곡사는 ‘유구 마곡의 두 물골의 둘레가 2백 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에 자리잡고 있다.은신처로서는 완벽한 곳이었을까? 김구 선생은 이 곳에서 머리를 깎고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스님 생활을 시작했다.
스승인 하은당 스님이 “견월망지(見月忘指)와 칼날 같은 마음을 끊으라는 인(忍)자의 가르침”을 주지만 백범은 주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걱정과 우려에 “청정적멸의 도법에 일생을 바칠 생각이 생기지 않았다.” <김구,『초판본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지식인하우스, 2016, p.147>
스님에서 독립군, 임시정부 주석에 이르기까지 백범의 행적은 투쟁과 망명, 그리고 독립운동의 한길이었다.
하나님이 소원이 무엇이냐고 세 번을 연거푸 물어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대답하겠다던 백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마곡사를 다시 찾았다.
“48년 전 머리에 굴갓 쓰고 목에 염주를 걸고 출입하던 길이다. 산천은 예와 같거니와 대웅전에 걸린 주련도 옛날 그대로다. 却來觀世間(각래관세간)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 그때에는 무심히 보았던 이 글구를 오늘에 자세히 보니 나를 두고 이른 말인 것 같았다.”
<김구,『초판본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지식인하우스, 2016, p.361-362>
백범 선생의 머릿 속에 남은 글귀.
「돌아와 세상을 보니 (却來觀世間)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 (猶如夢中事)」
백범이 걸어간 큰 발자국, 역사에 남긴 위대한 이정표를 뒷사람들은 잘 따르고 있는 걸까?
백범 김구 선생이 1946년에 심은 향나무는 80년 가까운 세월에도 마곡사 앞마당에서 빛을 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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