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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Jun 21. 2024

‘양탄자’(?) 탄 보살님…남성? 여성?

[순례노트②] 강진 무위사 백의관음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은 간결한 직선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쭉쭉 뻗은 직선 재료의 질감이 잘 드러나는데 짜임새 있는 구조는 측면에서 더 잘 확인된다.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맞대고 있는 지붕은 안정감을 주고, 황토색 벽에 드러난 목재들은 사각형 모양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선 초기 건축으로 국보로 인정받고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13호) 측면 모습

건물 자체도 보배롭지만 극락보전 내부도 보물섬이다.     

 

내부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과 뒤편을 장식한 벽화 모두 미술사적으로 인정받아 보물과 국보로 지정됐다.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1312호)과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313호)

그런데 불교미술을 잘 모르는 순례자에겐 내부 벽에 그려진 백의관음도가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선 전기인 1476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의관음도 역시 나라의 보물이다.

     

붉은색의 천 같은 걸 탄 관음보살이 힘차게 날아오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신비롭다. 


설마 양탄자를 탄 보살님?


대개 관음보살은 연꽃을 발아래 두는 경우가 많고, 의상대사가 671년 친견한 관음보살은 붉은 연꽃을 타고 왔다고 하지만 순례자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페르시안 카펫’ 같아 보이니 말이다.


여기서 잠시 유쾌한 상상을 해 보자.

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출처:국가유산포털)

관음 보살님이 아리비안나이트, 천일 야화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오셨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는 ‘마법의 양탄자’가 의인화돼 전 세계 어린이 팬들을 사로잡기도 했는데, 천 오백년 전 한반도에서 이미 그게 실현됐다는 말인가?     


그럼 관음보살님이 아랍계인가? 중동 출신인가?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의 기원은 확실치는 않지만 인도의 설화나 민담을 기초로 발전되었고, ‘인도 이야기’가 페르시아, 아랍, 이집트 등을 거쳐 18세기쯤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학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흑인에 가깝게 묘사된 알라딘은 중국인 포목상 아들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굳이 ‘관음보살의 국적’을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마법의 양탄자' 위에서 머리 쪽과 허리쪽의 흰색 천을 펄럭이며 힘차게 날아오는 모습은 어깨가 다부지고 강건한 남성을 연상케 한다.


자비의 대명사인 관음보살님이 남성인가? 더구나 우뚝 솟은 코 아래 있는 양갈래 수염과 굵은 목을 보면 ‘남성 맞구나’ 싶다.


그런데 손목에 두른 화려한 팔찌나 가늘고 긴 손가락을 보면 또 여성스러워 보인다.

무위사 백의관음도(출처:강진구청)

불교에서 보살은 인간을 초월한 상위 존재로 본다. 그래서 남여라는 성별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힌두교의 여성 숭배 신앙이 불교로 유입되면서 고려시대 이후부터 관음보살의 여성적인 이미지가 강조됐다고 한다.


상단 모서리에 한시가 적혀있고, 발치에는 선재동자 대신 노승이 있는 이 백의관음도는 의상대사가 동해바다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걸로 평가받는다.

백의관음도 상단에 적힌 한시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바닷가 절벽 외딴 곳에  海岸孤絶處  

낙가산 봉우리가 있으니 中有洛迦峰

관음은 머물러도 머문 바 없고 大聖住不住  

불법의 이치는 만나도 만남이 없네 普門逢不逢

보배 구슬 내 원치 않지만 明珠非我欲

파랑새와 사람 만날 수 있으니 靑鳥是人逢

단지 바라는 건 푸른 파도 위에 但願蒼波上

친히 보름달 같은 모습 뵈옵게 하소서. 親添滿月容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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