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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Oct 11. 2024

7층 석탑이 금당에 들어선 이유는?

[순례노트⑱]하동 쌍계사 금당과 육조 혜능

화개(花開) 옥천사(玉泉寺). 꽃피는 대궐에 옥처럼 맑은 샘 같은 절이다.      


723년 창건할 땐 옥천사였으나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고 해서 887년에 ‘두 시내가 만나 어울린 절’이라는 뜻인 쌍계사(雙磎寺)로 바뀌었다. (경남 고성에 옥천사라는 이름난 절이 지금도 있다)     


쌍계사 옛길 입구에 큰 바위 두 개가 서 있는데 ‘쌍계’ ‘석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857~?)이 쓱 지팡이로 쓴 글씨라고 한다.      

쌍계사 옛길 입구에 있는 쌍계.석문 바위 (출처:쌍계사 홈페이지)

고운 최치원은 국가 개혁을 위해 시무 10조를 왕에게 건의한 대학자이자 문장가이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치며 일할 정도였으니 요즘 말로 하면 글로벌 지식인이다.     


최치원이 문장을 짓고 글을 쓴 비석이 쌍계사에 있다. 국보 47호 진감선사탑비이다.      

진감선사대공령탑. 국보47호. (출처:쌍계사 홈페이지)

비석에 새긴 글씨도 신비롭지만, 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 글씨는 아무리 봐도 오묘하다.   

   

‘당해동고진감선사비’(唐海東故眞鑑禪師碑)라고 쓴 거라고 하는데, 글씨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림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의 한자서체인 전자체(篆字體)라고 한다.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춤추는 듯 너울거리는 필체는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범패소리를 글자로 표현해 진감선사에게 최상의 예경을 표했다.

물고기가 튀어 올라 하늘로 솟아오른 것 같은 글씨로 진감선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불교신문, 2021.6.9.>     

'당해동고진감선사비'라고 적힌 비석 머리 부분(출처:불교신문)

진감혜소(眞鑑慧昭,774~850)선사는 840년 당나라에서 귀국해 선(禪)과 불교 음악인 범패로 대중에게 불법을 펼친 큰 스님이었다.   

   

그런데 최치원의 비문에는 “굴지법윤(屈指法胤)하면 즉선사(則禪師)는 내조계지현손(乃曺溪之玄孫)”이라는 문장이 들어있다. 법의 서열을 따져보니, 선사는 조계육조(六祖)스님의 현손이라는 뜻이다.”<불교신문, 2024.3.15.>      

진감선사탑비 비문(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진감선사가 ‘조계육조(六祖)스님의 현손’이라니, 6대 할아버지의 손자의 손자라고?       


중국에서 선불교는 달마대사를 원조로 해서 2대 혜가, 3대 승찬, 4대 도신, 5대 홍인, 6대 혜능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당나라에서 공부한 진감선사는 6대 혜능선사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이어받은 적통으로서 이 땅에 선불교를 전파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감선사 진영(출처:쌍계사 성보박물관 홈페이지)

육조 혜능(六祖慧能,638~713). 선불교의 실질적 창시자로 불리는데, 불교 경전『금강경』에 대한 해설서로 이름높다. 지금도 불교에 관심있는 이들은 한 번쯤 읽어보려고 하는 책이다.


“『금강경』은 문자를 ‘통한’ 불교와 문자를 ‘떠난’ 불교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교敎와 선禪의 접점이 바로 이 경전입니다. 이 경전이 대승의 중심이면서도 선의 근본이 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기도 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선의 실질적 창시자인 육조 혜능은 남방 벽지 시골에서 어느 스님이 지나가며 읊조리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 불법의 소식을 얻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그는 나중 금강경의 가장 빛나는 주석이면서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구결口訣』을 남겼습니다.

     

…스님의 『금강경 구결』은 불교에의 접근을 가로막는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용어를 배제하고 『금강경』의 취지를 우리네 ‘마음’의 실제와 구체적으로 연관된 지평위에서 깨우쳐주고 있는 과시 걸작입니다.”

<한형조,『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문학동네, 2011, pp.32~41>     

육조혜능선사 진영(출처:불교신문)

요즘 말로 하면 금강경 해석의 최정상 일타강사였던 모양이다.  

    

어려운 문자 대신 쉬운 말로, 또 알아듣기 편한 비유를 사용하며 설명했단다. 게다가 육조 혜능은 글을 읽지 못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문자를 전혀 몰랐는지, 선종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현한 것인지도 은근히 헷갈린다.  

하동 쌍계사 금당. 현판 3개가 나란히 걸려있다.

쌍계사에는 육조 혜능을 기리는 전각이 있다. 금당(金堂)이다. 특이하게도 부처님은 없고 7층 석탑이 들어서 있어 보는 이를 어리둥절케 한다.    


전각 입구엔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라는 편액과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라는 편액이 금당 편액 좌우에 나란히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세계는 부처님이란 하나의 연꽃과 달마에서 혜능까지 6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쌍계사 금당에 걸린 육조정상탑(좌) 세계일화조종육엽(우) 현판. 추사 글씨 원판은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런데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은 얼른 안 들어온다. 육조 혜능의 머리를 모신 탑이라니?
 
실제로 기록에는 “723년에 삼법, 대비 두 스님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두상을 모셔다가 ‘삼신산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가지고 귀국해 지금의 쌍계사에 봉안했다”고 나와 있다.     


선불교의 창시자라고 떠받드는 분의 머리를 중국에서 가지고 왔다고? 삼국지의 관우도 아니고 시신을 훼손해서 우리나라에 가지고 온 거란 말인가?     

하동 쌍계사 금당 내 육조정상탑(7층 석탑)

그런데 육조 혜능선사가 36년간 주석했던 중국 광둥성 사오관시의 남화선사에 가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단다. 육조 혜능의 등신불이 온전한 모습으로 지금도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거다.


713년 혜능 선사가 입적했을 때 제자들이 선사의 법신에 옻칠을 하고 향을 발라 영구 보존했단다. 처음엔 탑 안에 모셔두었는데 혹시 모를 도난에 대비해 등신불을 남화선사 육조전 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럼 쌍계사의 육조정상탑은 뭐지? 굳이 따지자면 남화선사의 진신불이 혜능이 아니든지 쌍계사 금당에 육조의 머리가 없든지 둘 중에 하나 아닐까?     


쌍계사에 육조의 머리를 모셨다는 설화는 좋게 해석하면 선불교의 정수, 골갱이가 이 땅에 있다는 일종의 선언 아닐까 싶다.      

쌍계사 금당 내부. 왼쪽에 육조 혜능 진영이 보인다. (출처:쌍계사 홈페이지)

『금강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는데, 육조정상탑의 존재 혹은 그것이 은유하는 점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교에 깊지 못한 순례객이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내가 보는 형상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내가 (주관적으로) 보는 모든 형상은 실체의 형상이 아님을 알면 곧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정도로 해석해 보면 어떨지 싶다.     


금강경을 풀이한 한형조 교수는 이렇게 번역한다.     


“무릇 모든 표징은 다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니 만약 일체의 표징이 순전히 의식의 구성물임을 깨달으면 그때 너는 여래를 보게 될 것이다.”<한형조,『허접한 꽃들의 축제-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소疏』,문학동네, 2011, p.204>     

경매에 나온 만해 한용운『님의 침묵』초판본 (출처:부산일보)

그러면서 만해 한용운(1879~1944)선생의 시집 『님의 침묵』의 서시(序詩)격인 「군말」의 한 구절인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라는 표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육조 혜능은 『금강경 구결』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건너와 금강경의 뜻을 전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숨겨진 진리를 깨닫고 진정한 본성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선불교가 깨닫고자 하는 핵심이 금강경에 잘 들어있다는 의미라는데 우리나라 불교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우리 불교의 대표 주자인 조계종의 이름을 혜능선사가 주석했던 남화선사가 있는 ‘조계산’과 시냇가인 ‘조계’에서 가져온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하동 쌍계사 금강계단

혜능선사가 남긴 마지막 게송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 스스로 그 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벚꽃 필 때 화개십리와 ‘호리병 속 별천지’ 쌍계사를 가 봐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듯하다.     


「兀兀不修善 (태연히 앉아 선을 닦지도 말고)

  騰騰不造惡 (당당하게 악을 짓지도 말고)

  寂寂斷見聞 (고요히 보고 듣는 것 다 끊고)

  蕩蕩心無着 (마음을 풀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혜능,『육조단경』,학이사,2015,p.265>  ///TOK///         


**주) 18번째 에피소드인 하동 쌍계사 편으로 사찰 순례자의 노트1을 마무리 한다. 곧 사찰 순례자의 노트2를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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