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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Oct 04. 2024

천년 할머니 나무와 4백년 문살에 핀 ‘꽃’

[순례노트⑰]부안 내소사 꽃문살과 단청

내소사는 나무가 좋다.  

    

곧게 뻗은 전나무 7백 그루가 만드는 울창한 숲길 터널이 좋다. 오대산 월정사, 광릉 국립수목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이란다. 전나무가 뿜어내는 향기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내소사 경내에선 흔히 찾기 힘든 당산나무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부안 내소사 '할머니당산' 느티나무

높이가 20미터, 둘레가 7.5미터인 느티나무는 1천 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름은 ‘할머니당산’    

  

옆에 있는 300살 보리수나무가 ‘초여름에 향기로운 꽃이 만발해 많은 벌떼가 공양하고 간다’며 자랑하지만 천년 ‘할머니당산’의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내소사 할머니당산나무와(왼쪽) 300살 보리수나무(오른쪽)

부처님 도량에 토속신앙이 자리 잡은 건 불교와 민간신앙의 융합이다. 해마다 음력대보름이면 내소사에선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바라는 당산제가 열린다


할머니당산이 있는 내소사 경내에선 스님들이 불교식으로, 일주문 밖에 있는 700살 할아버지 당산나무에선 주민들이 유교식으로 연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융합에다 유교식 제례까지, 내소사 당산나무는 ‘종교 소통의 증표‘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할머니당산을 뒤로하고 대웅보전을 마주보면 색이 날아간 현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청을 새로 칠하지 않아 화려하지는 않다. 나무색이 담아 낸 세월과 고졸미를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좋다.     

  

대웅보전에서 순례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문짝마다 그려진 꽃문살 무늬다.

내소사 대웅보전 꽃문살

꽃문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바라기 꽃과 연꽃, 국화꽃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전설 속의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꽃 한 잎 한 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데, 여섯 꽃잎을 조각하며 기묘하게 맞추어 나간 연속 문양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


내소사 홈페이지에 적힌 설명이다.

대웅보전 꽃문살 연속문양

“수백 년 세월에 채색은 지워졌지만 나뭇결은 그대로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다운 꽃무늬.” 그 무늬를 하나하나 새긴 장인의 공덕이 대단하다.     

꽃문살 문양 근접 촬영

「한 송이 한 송이마다 금강경 천수경을 새겨 넣으며

풍경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담아냈을

누군가의 소명을 살그머니 엿보고 싶다

매화 국화 모란 꽃잎에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새겨 넣었을

그 옛날 어느 누구의 곱다란 손길이

극락정토로 가는 문을 저리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인지…」

<김혜선, 「내소사에서 쓰는 편지」중 일부, 2019 >   

내소사 대웅보전 내부 단청

꽃무늬에 감탄하며 대웅보전으로 들어가는 데 예상 밖이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긴 하지만 단청의 화려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들보를 90도로 연결하는 보에는 용의 모습을 조각했는데,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용이 물고기를 잡아 챌 만큼 물 기운이 많다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내 화재를 예방하려는 일종의 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쪽 보에 빈 공간이 눈에 띈다. ‘포’가 들어 있어야 하는 데 빠진 탓에 ‘공포’가 된 것이다.


포는 기둥 위를 가로지른 보 위에 나뭇가지처럼 나와 있는 것으로 보와 서까래 사이를 장식하는 거라고 한다. 하나면 일포, 세 개면 삼포 이런 식으로 부른단다.     


목침이 빠져 공포가 된 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선조들은 흥미로운 전설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인 1633년 청민 대사가 절을 건립하는데, 호랑이가 변한 대호(大虎)선사가 법당을 지었다는 전설이다. 대웅보전을 짓는 데 대패로 목침만 수없이 만들어 노적만큼 쌓아 올렸단다. 목침만 만드는 게 얄미워 사미승이 목침 하나를 감춘 줄도 모르고.


목침 깎기 3년이 되던 날 하나가 모자라자 눈물을 흘리며 법당을 완성할 수 없다고 했단다. 청민 대사는 그래도 법당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고,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대웅보전은 포가 하나 빠진 채 완성됐다는 거다.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 단청

아름다운 단청은 관세음보살이 오색찬란한 새의 모습을 하고 칠했다는 전설도 더해진다. 


천정에는 연꽃과 모란 같은 꽃들이 네모 칸에 연속으로 그려져 있고, 선학 그림이 바깥 네모 칸을 차지하고 있다. "부드럽고 화려한 장식이 나무 건물에 생기 넘치는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웅보전 법당 천정에 단청 문양을 배치할 때는 대칭과 반복의 원리, 고귀한 중심 문양을 겹겹이 에워싸는 중중무진의 원리로…바깥에서 중심으로 선학-모란과 연꽃-팔엽 연화문-팔엽 연화문의 순서로 깊어지게 배열했다. 정법계 진언(Om Ram)을 봉안하는 팔엽 연화문 문양의 내용적 깊이를 예술의 조형원리로 극대화하여 장엄(장식)의 지향점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한다.”<노재학,2021>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 단청

“결국은 청정한 마음에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은)교의와 예술의 조화로움의 극치를 이룬 산사 단청 장식의 원형으로 손꼽을 만하다.…한국 산사 법당 천정은 예술과 종교 교의, 수리적 기하학이 통일구조를 이루고 있는 법계 우주다.”

<노재학,『한국의 단청1: 화엄의 꽃』, 미진사, 2021, p.276>  

능가산 아래 내소사 설선당(왼쪽). 오른쪽은 설선당 입구 근접 촬영

능가산 아래 천년 나무와 단청 장식이 살아 숨 쉬며 순례객을 맞이하는 곳.

'이곳에 오면(來) 모든 게 살아나는(蘇)'  이름 그대로 내소사다.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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