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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Sep 27. 2024

선계인가? 불계인가?…지극한 인간 세상

[순례노트⑯]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뒷간


신선 선(仙)에 바위 암(巖). 선암사     


절 이름이 왜 신선바위지? 부처님이 바위에서 신선과 바둑이라고 한판 두시나?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걷다보면 이내 아하! 무릎을 치게 하는 다리에 도착한다.    

 

승선교(昇仙橋)

순천 선암사 앞 승선교

사람이 신선이 되는 다리인지, 신선이 노닐다가 선계로 돌아가는 다리인지 얼른 구별되지 않지만, 다리를 바라보는 멋은 남다르다.      


반원 형태의 무지개다리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계곡물에 비쳐 온전한 원형이 되는 풍광도 매력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무지개다리로 보물 400호다.      

선암사 승선교와 보물 4백호 표지석

바로 옆엔 승선교와 잘 어울리는 누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름도 근사하게 대비를 이룬다.

강선루(降仙樓). 신선이 내려오는 누각이란다.      

승선교와 강선루는 신선 세상으로 들거나 나는 입구 혹은 관문 같은 건가? 이 곳을 지나면 부처님 도량인 선암사가 나오는데…


‘션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 라는 고산 윤선도의 시조 가락이 불쑥 떠오르는 건 무슨 조화일까?     

순천 선암사 강선루

그런데 승선교를 보고 있노라면 아치형 다리를 축조한 사람의 지혜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오히려 놀랍기까지 하다.      


계곡 바닥에서 무지개다리까지 높이가 4.7미터 정도이고 다리 위 길이는 14미터, 폭은 4미터 정도라는데, 조선 숙종때인 1713년 호암화상이라는 분이 6년 만에 완공했단다.     


무지개다리 아치 쪽을 올려다보면 길고 매끈한 돌 39개가 빈틈없이 짜 맞춰져 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출처:선암사 홈페이지)

다리 위에서 누르는 무게를 견뎌야 하는 동시에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을 이겨내야 하는 게 아치형다리의 숙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점에 놓인 이맛돌(키스톤, key stone)을 중심으로 각각의 돌이 자기 몫만큼의 하중을 책임져야 하고, 또 중력도 적절히 잘 분산시켜야 한다.      


떠받치고,버티고,밀어내고,끌어당기는 힘들의 균형과 조화, 책임, 적절한 배분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무지개다리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구조인 거다.      

아치 중앙에 용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삐죽 나와 있는데 그걸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한다. 사람에게 경계심을 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용을 사용한 것도 돋보인다.     


신선 노니는 곳을 뒤로 하고 절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길고 둥근 타원형의 연못이 나온다.     

순천 선암사 삼인당

삼인당이란 연못인데, 신라 때인 862년에 도선 국사가 축조했다.      


삼인당. 불교의 이상인 삼인(三印)을 뜻하는 거란다. 삼인(三印)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말한다.


모든 것이 변하며,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니 자신에 집착하지 않으면, 온갖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는 고요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불교의 높은 이상을 상징한 연못이다.    

선암사 삼인당 (출처:순천시청)

선암사 오는 길엔 신선을, 절에 다다라선 불교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인당은 화재에 대비하는 기능도 갖고 있지않았을까?     


일주문을 지나 이 곳 저 곳을 돌아보다 원통전 앞에 섰다.

순천 선암사 원통전

계단 오를 때 제법 운치가 있고 지극히 인간적인 사연도 품고 있어 정이 더 가기도 한다.     


아들이 없어 고민하던 정조 대왕이 1789년 선암사 눌암 스님과 해붕 스님께 세자 탄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부탁했단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이듬해 정조대왕은 왕자를 보게 됐고, 그 왕자가 순조 임금이라고 한다.      

순조 임금이 즉위한 후 은혜를 갚기 위해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했다고 한다. 하늘과 인간 세상에 큰 복을 짓는 밭으로서 누구나 스스로 짓는 복만큼 스스로 거둔다는 뜻이라고 선암사는 해석하고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장소는 또 있다. 그것도 매우 유명하다. 선암사 해우소, 뒤ㅅ간이다.     

선암사 해우소 뒷간 (출처:순천시청)

1862년 시작돼 세계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정원 박람회 ‘첼시 플라워쇼’에서 2011년 황지해 작가는 ‘해우소’라는 작품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꽃과 나무, 향기로 가득한 정원 축제에 한국의 뒷간을 끌어들여 유럽과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해우소의 원형이 선암사에 매우 잘 보존돼 있다.    

선암사 해우소 (출처:순천시 공식블로그)

뒷간 벽면 한 켠엔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도 볼 수 있다.     

선암사 뒷간에 있는 정호승의 시 '선암사' (출처:kydong77.tistory.com/22455)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고 말하는 시인. 해우소에서 깨달은 소중한 지혜를 풀어낸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2013>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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