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⑮]진안 마이산 탑사·은수사와 이성계
마이산은 신기하기도 하고 또 영묘한 느낌을 준다. 말 그대로 신령스러운 산이다.
바라보기에 따라 그냥 말의 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정하고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단순한 말의 귀 느낌 이상이다. 신이 사용하는 칼이나 도끼의 날을 잘 벼릴 것 같은 숫돌 같기도 하고 그 자체가 찬란한 금빛을 내는 영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령스러운 기운을 잘 포착한 이가 태조 이성계다.
이성계가 어릴 적 꿈에 ‘신선이 나타나 나라를 바르게 할 사람은 이성계뿐이라며 금으로 만든 자 ‘금척’을 줬다’고 한다. 자는 사물을 재고 측량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것도 금으로 만들었으니 길몽 중에 길몽이었을 거다.
그런데 고려 말 남원에서 왜구를 소탕한 이성계가 개경으로 가는 도중 마이산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꿈속에서 신선이 금척을 준 장소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란다.
이성계는 마이산 은수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조선 건국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신선이 자신에게 금척을 준 것을 새로운 왕조와 규범을 만들라는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인 것이다.
은수사 앞마당에는 높이 15미터의 청실배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386호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심은 씨앗이 자란 나무라고 하는데, 나이가 650년이 넘었으니 조선 창건과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
은수사 태극전 외부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고 내부에는 금척을 받는 걸 묘사한 ‘몽금척수수도’라는 그림이 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태극전이 잠겨 있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일월오봉도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볼 수 있듯이 임금의 배경을 장식해 왕권을 상징하는 그림인데, 이성계가 새 왕조 결심을 굳힌 마이산의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이산의 신령스러운 기운과 계시를 잘 받은 덕분일까?
조선건국 초기 개국공신 정도전은 이성계가 금척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몽금척'이라는 음악이 섞인 궁중무용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신령스러운 느낌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은수사에서 마이산 봉우리를 바라보면 마치 자갈과 시멘트를 비벼 산을 쌓아올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이산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착각한 외국인이 이 산을 쌓을 수 있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시멘트가 많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충당했느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고 한다.
1억 년 전 마이산은 호수였고 그 바닥이 솟아올라 봉우리가 됐단다.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여 굳어진 역암이 두 개의 덩어리를 이뤄 지금의 마이산이 됐다고 한다. 마이산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타포니(taffoni)라고 부른단다.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운 물질이 자갈보다 빨리 풍화돼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질 현상이 나타난 이 일대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이 추진중이다.
그런데 자연보다 더 신비로운 게 사람의 노력인 것 같다.
은수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탑사 이야기다. 입구에 들어서면 80여개의 크고 작은 모양의 탑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수많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외줄탑’과 ‘원추형 석탑’의 조화가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이갑용 처사가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계시를 받고 30여 년 동안 쌓은 탑들이라고 한다. ‘이 탑들의 위치와 모양은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과 그 호위를 받는 천지탑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 쌍의 탑이다. 백 년의 풍상을 하나같이 지켜오고 있는 건 부처님만이 아실 불가사의’라고 마이산 탑사 홈페이지는 설명하고 있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든 걸작이라면 탑사의 돌탑들은 인간이 만든 역작이다.
미국 CNN은 “80개가 넘는 탑들이 태풍과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며 “접착제나 시멘트를 쓴 것도 아니고 홈을 파서 끼워 맞춘 것도 아닌데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미스터리”라고 적고 있다.<CNN, “33 of South Korea's most beautiful temples”, 2020.1.20.>
마이산은 2011년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 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 소개돼 만점인 별 3개를 받아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 명소로 평가받았다고 진안군은 자랑한다. ///TOK///
*주) 글 제목의 배경 사진은 진안군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