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2-➉] 합천 해인사 김영환 장군과 성철 스님
해인사 대적광전 뒤로 매우 높은 담장이 둘러쳐 있다.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곳까지 가려면 30개 남짓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앉아 있는 해인사 대적광전을 5~6미터 위에서 굽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아래쪽에서 불길이 일어도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판전이다. 60간짜리 165평의 두 긴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바라보고 있다. 국보 52호다.
공기의 흐름과 햇빛, 온도, 습기의 조절과 방충 기능 등등이 완벽해 5백 년 전에 지어졌지만 21세기에도 그 비밀을 완전히 풀지 못할 정도로 최첨단 건물이다.
그곳에 보관된 대장경도 경이롭다. 해인사에는 81,258장의 대장경 판이 보관돼 있다. 국보 32호다.
번뇌가 이렇게도 많구나 싶은데, 8만 4천 가지 중생의 번뇌에 대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해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수백만 개의 글자가 틀리거나 빠진 글자 없이 바르고,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필체가 한결같아 ‘신기’를 접하는 느낌이라고 해인사는 설명한다.
조선 후기 천재인 추사 김정희가 “사람이 쓴 게 아니라 마치 선인들이 쓴 것 같다”고 찬탄했다고 한다
대장경판전은 1995년 석굴암·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고, 팔만대장경은 2007년 세계 기록문화유산이 됐다.
우리의 보물, 세계의 유산이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951년 지리산 일대에는 북한군 패잔병 4천여 명이 남아 있어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전투부대’는 효율적인 작전을 위해 한국 공군에 공중 폭격 지원을 요청했다.
사천 비행장에 있던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김영환 장군(당시 대령,1921~1954)팀이 임무를 맡았고 작전은 그 해 8월 17일부터 9월 18일까지 진행됐다.
'공비토벌 작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가야산 일대 북한 패잔병 9백 명을 소탕해 달라는 출동 요청이 전달되고, 김영환 대령은 F-51 전투기 4대를 이끌고 출격한다.
정찰기가 적을 발견하고 타격지점에 연막탄을 놓았다. ‘해인사 대적광적 앞’이었다
찰나의 순간, 김영환 대령은 폭격중지 명령과 동시에 작전지역 상공 선회를 편대원들에게 지시했다.
김영환 대령과 F-51 편대는 이윽고 도주하는 북한 패잔병의 집결지와 탄약 집적소를 해인사 뒷산 중턱에서 발견하고 폭탄과 로켓탄, 기총 사격으로 섬멸한 뒤 기지로 귀환했다.」
<자료와 증언록을 토대로 재구성>
“사천기지에 근무했을 때 김영환 전대장으로부터 ‘야, 오늘 내가 절을 공격할 뻔 했어, 큰일 날 뻔했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배상호 예비역 장군)
“당시 김영환 전대장이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해인사를 공격할 뻔했어’라고 했다. 당시엔 무슨 이야기인 줄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 (박재호 예비역 장군)
<경향신문, 2020.6.24.>
김영환 장군은 ‘2차 대전 때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을 전략폭격으로 초토화했지만 세계 3대 사원의 하나인 쾰른의 대사원 만큼은 파괴하지 못하게 명령해 인류 유산을 지켰다는 말을 젊은 조종사에게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윤응렬, 2007>
자신의 말처럼 해인사를 지켜냈고 그걸 기리기 위해 2002년 해인사 앞엔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공적비’가 건립됐다.
그런데, '해인사 수호자'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논란이 2006년부터 나온다.
김영환 장군의 참모였던 000장군(당시 중령,1924~2015)이 ‘그깟 인민군 몇 명 때문에…해인사를 불타게 할 수 없었다’며 미군이 내린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했다고 구술 회고록에 쓴 것이다.
명령 불복종을 안 미군 부대장 윌슨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해 ‘처형시켜버리겠다’고 소리 질렀고, 대통령도 자신과 명령불복종에 동조하는 김영환 대령을 포살(砲殺)하려 했지만 끝내 해인사 폭격 명령을 막아냈다고 주장한 것이다.
2008년 6월 5일 문화재청이 엮어 펴낸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라는 책에는 김영환 장군이 아닌 000장군이 ‘팔만대장경 수호자’로 등장했고, 논란은 증폭됐다.
팔만대장경 수호자가 김영환 장군이 아니란 말인가?
검증에 불이 붙었다.
6.25때 전투기 조종사로 활동한 윤응렬 장군의 지적이다.
‘당시 작전은 정확한 목표를 지정받고 출격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대가 요청한 지역 상공에서 정찰기가 제시해 주는 목표를 공격하는 형태였다. 출격 전에 목표가 해인사라고 정해질 수가 없다. 또 한국 공군이 단독으로 경찰의 토벌 작전을 지원한 것이라 미군이 ‘해인사 폭격’ 명령을 내릴 이유도 없다.
…2000년대 초반 필자는 당사자인 윌슨 대령을 만날 기회가 있어 ‘해인사 작전’을 물어보니 그는 우리 공군이 해인사를 공격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해인사 작전에 대한 질문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왜 문제가 되는 지 반문했다.’
<윤응렬, 「000장군 회고록의 고찰과 소견」,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2007,pp.13~16>
공군도 2009년 역사자료발굴위원회를 만들어 넉 달 동안 조사했다. 한국전쟁 때 100회 이상 출격한 조종사 등 1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회고록과 문화재청 책에 게재된 오기(誤記)와 근거없는 날조(捏造) 사례는 적지에 출격해서 전공을 세운 선배 조종사들과 공군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김덕수,『항공징비록. 김두만 공군 대장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21세기북스,2017,p.256>
문화재청은 결국 1년 5개월이 지난 2009년 11월에『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개정판을 냈다. 000장군의 챕터는 빠지고 바로 그 자리에 「김영환 대령 영단(英斷)으로 고려대장경판을 지키다」라는 챕터가 들어갔다.
그러면서 ‘000장군은 김영환 장군과 의기투합하여 명령 이행을 지체했다고 한다...공군 측에 확인한 결과 당시 000중령이 참모로서 김영환 대령에게 해인사 폭격 중지를 건의했을 개연성은 있으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나 자료를 찾을 수는 없다.’며 초판의 오류를 인정했다.
<문화재청 엮음,『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개정판,눌와,2009,pp.205~210>
조사에 참여했던 김두만 장군의 말이다.
“팔만대장경의 진짜 수호자는 김영환 장군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다만 단서를 달아 두었습니다. 긴박한 전시상황에서 혹시라도 두 분이 전대장과 참모로서 가야산 쪽 공비토벌작전, 특히 해인사 폭격에 관한 얘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다는 출구전략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김영환 장군은 지금 천상에서 자신의 공적비가 세워진 걸 부끄럽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조국 하늘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군인의 사명이자 도리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셨는가?’라고 말입니다.
팔만대장경의 진짜 수호자 논란을 벌이는 이승의 한심스런 모습을 저승에서 지켜보며 ‘이 무슨 쓸데없는 짓들을! 당장 집어치우시게!’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김덕수,『항공징비록. 김두만 공군 대장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21세기북스,2017,pp.258~260>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세계유산의 수호자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라도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당시 공비토벌 작전을 수행한 직속상관이 대장경 수호자, 영웅으로 추앙받는 게 부러웠을 수도 있다. 또 자신도 작전에 기여했는데 몰라줘서 화가 나거나 욕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세가지 독을 경계하라고 한다. 이를 가르치는 대장경, 팔만대장경의 수호가 오히려 탐진치의 대상이 된 것 같아 역설적이다.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못 보고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미화하거나 자신 만의 프리즘으로 왜곡한 건 아닌지?
해인사는 성철 스님(1912~1993)이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면서 오랫동안 계시던 곳이다.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며 우리 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어른이다. 백일법문을 비롯해 좋은 말씀과 숱한 명언을 남겼는데,
‘내 말에 속지 말고’ ‘자기를 바로 보라’고 당부했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종정 취임 법어.1981.1.20.> ///T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