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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웅 육신과 정신 있는 곳…손오공이 왜 나와?

[순례노트2-⑪]양산 통도사 금강계단과 서유기 벽화

by 동욱

영축산 통도사.

인도에서 큰 가르침을 낸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신과 육신이 이 땅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을 상징한다.

흥선 대원군(1820~1898)이 쓴 일주문 현판 글씨도 인상적이지만 아래 세로로 쓴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양산 통도사 일주문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해강 김규진(1868~1933)의 글씨다.

양산 통도사 불이문

부처님의 종갓집답게 통도사는 꽤 넓다.


3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 데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 대광명전 권역의 중로전 그리고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으로 구분한다.


불이문을 지나 상로전 구역으로 곧장 갔다. 정(丁)자 형태인 대웅전(大雄殿)이 순례객을 반긴다. 국보 290호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거처다. 대웅전 내부엔 불상은 없다. 대신 불단 뒤편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대웅전 건물엔 이름표가 네 개다. 동서남북 네 곳에 커다란 현판이 붙었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편액이다. 부처님의 공간이니 쉽게 이해된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현판

시계 방향으로 돌아 남쪽으로 가면 금강계단 현판이 달려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현판을 바라보면 건물 너머에 금강계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현판

다시 시계방향으로 돌아 서쪽으로 가면 대방광전(大方廣殿) 현판이 걸려 있고, 금강계단이 있는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금강계단 참배 시간이 아니라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대웅전과 금강계단 현판은 이해가 되는데, 다른 두 현판이 걸린 의미는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대방광전 현판

주수완 교수의 설명이다.


“금강계단에서 바라보는 쪽의 적멸보궁 편액은 금강계단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마치 2,500년 전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를 지금 막 눈앞에서 뵙는 듯한 현재성을 느끼게 한다. 서쪽의 대방광전 편액은 맞은 편 동쪽의 대웅전과 대칭이 되어 부처님께서 지상에 머무실 때는 큰 영웅(大雄)으로, 그리고 열반에 들어서는 법신의 큰 진리의 빛으로 나투심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주수완,『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조계종출판사,2020,p.36>

대웅전 전각을 돌면 금강계단이다.


동서로 10.43m, 남북으로 10.29m 길이라고 한다. 상하 넓은 기단부 중앙 위에 석종 형태의 사리탑이 있다.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頂骨)과 치아사리(齒牙舍利)등과 금란가사(金襴袈裟)가 봉안돼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스님이 되는 계(戒)를 받는 데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부처님 종갓집의 증표다.


“석종형으로 탑을 세운 이유는 이곳에 모신 사리는 진정한 부처님의 사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로 읽힌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탑이야 말로 인도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스투파 형태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주수완,2020>

양산 통도사 용화전과 봉발탑

직접 금강계단에 참배하지는 못하고 나오는데, 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돌탑과 그 뒤에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에 들어 사리도 수습했으니, 미래에 올 미륵 부처님이 중생 구제의 임무를 이어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용화전으로 다가가는데 이 탑이 상징하는 것도 비슷하단다.


봉발탑(奉鉢塔). 약 230cm높이로 보물 471호다.

통도사 용화전 앞 봉발탑 상부

받침돌 위에 뚜껑이 있는 밥그릇을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스님이 후계자를 정할 때 자신의 가사와 공양 그릇인 발우를 전달한다. 이 탑이 발우의 형태인 건 석가세존과 미륵불의 관계를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처럼...<출처:통도사 홈페이지>

통도사 용화전 내부 모습과 봉발탑

용화전은 민중을 위한 공간 역할도 했던 것 같다.


용화전 내부 동쪽과 서쪽 벽면에서 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 벽화가 2009년 발견됐다. 7가지 장면이 묘사돼 있다고 한다

용화전 내 서유기 벽화 '흑송림삼중심사도'(출처:연합뉴스)

‘선림사에서 쉬다가 요괴에 잡혀간 현장법사를 찾던 손오공이 머리가 셋에 팔이 여섯 개인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로 변해 광분하는 모습’(흑송림삼중심사도,黑松林三衆尋師圖)이 보이고,


당 태종이 수륙재를 주관할 고승으로 현장 법사를 뽑아 성대하게 의식을 치르는 모습의 그림도 있다.

(현장병성건대회도,玄裝秉誠建大會圖)

용화전 내 서유기 벽화 '현장병성건대회도' (출처:연합뉴스)

통도사 명부전 외벽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같이 조선 후기에 유행한 영웅소설을 표현한 그림이 여럿 있고, 내부엔 민화 류의 그림이 많다.

양산 통도사 명부전 토끼전도

특히 거북이가 토끼를 태우고 바다 건너 용궁으로 향하는 별주부전 그림, ‘토끼전도’가 있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그렇다.

양산 통도사 명부전 토끼전도 부분

“고전소설이 사찰벽화로 등장한 데는 첫 번째로 화재와 관련한 벽사(辟邪)의 기능이다. 서유기의 주인공은 요괴를 퇴치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줄 뿐만 아니라 화재 예방의 의미도 있다. 토끼 용궁행도 수중세계가 화재에 대비한 소재구(消災具)역할을 하는 기능도 있다.

또 다른 기능은 교화적 기능이다. 서유기 주인공은 81가지 난을 헤쳐 나가 경전을 구해오는 영웅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려움을 겪어 나가는 과정은 대중에게 귀감이 될 소재다. 삼국지연의는 충효와 의리를 강조하며, 토끼 수궁행에 등장하는 용왕은 불교경전 수호의 역할도 한다. 불화가 가진 교화의 기능을 건물 안팎에 직접 표현하는 벽화로 그려 역할이 더 극대화 됐을 것이다.” <박세진,「조선후기 사찰의 고전소설 벽화 연구」,『불교미술사학』,Vol.36,2023,pp.123~125>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 반야용선도

극락보전 외벽의 반야용선도는 인물의 표정이 살아 있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도 앞부분

지옥생활을 막 청산하고 극락행 배에 오른 갓 쓴 선비와 평민들, 아낙네들 등등이 희망에 차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도 뒷부분

하늘색 용이 이끄는 배에 파란색 지붕이 있는 걸로 봐선 최고급 유람선일 것 같기도 하다. 지옥같은 곳을 벗어났는데 언제쯤 극락에 도착하는 지 보살님에게 물어보는 듯한 사람의 모습에선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 '반야용선도' 태풍 마이삭으로 아랫부분이 훼손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반야용선도 아랫부분이 훼손돼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통도사 곳곳에서는 세심한 디테일도 느껴진다.

통도사 대웅전 꽃문살

대웅전 문창살은 완벽한 대칭과 반복을 보여준다. 꽃모양 하나하나가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작용하고 또 어우러지는 중중무진의 부처님 세계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는 단청 꽃 그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마 밑 나무에 그려 넣은 그림 장식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울텐데, 그곳에 들인 공력과 세심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석가모니 세존의 정신과 육신이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곳.


보배로운 부처님을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通度寺).

‘부처님이 모든 진리와 이치를 깨달아 중생을 제도했다(通萬法 度衆生)’에서 따온 그 이름 그대로다///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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