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2-⑬]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과 자장율사
태백산 정암사에는 흔히 보기 힘든 탑이 있다.
정암사 적멸궁에서 산비탈 계단을 따라 7~8분 정도 올라가면 7개 층으로 된 석탑을 만날 수 있다.
탑 정상 상륜부에는 청동으로 제작된 장식이 올라가 있고 각 층의 끝 지붕은 살짝 들려있어 생동감을 준다.
바람을 먼저 만나는 작은 종, 풍경이 각 층의 네 모서리마다 달려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같은 느낌이다.
보통 석탑하면 바위나 커다란 돌을 깎아서 세운 걸 생각하게 되는 데 이 탑은 다르다.
벽돌 모양의 돌을 3미터 너비에 9미터 높이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3010개의 돌이 사용됐단다. 석회암 가운데 강도가 가장 센 돌로마이트(dolomite, 고회암)를 일일이 갈아서 벽돌모양으로 만들었으니 그 정성도 대단하다.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탑, 전탑(塼塔)을 본떴다고 해서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불린다.
1964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2020년에 국보 332호가 된 수마노탑이다.
“신라시대 이래 모전석탑에서 시작된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 그리고 균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고…경주 불국사 석가탑(국보 21호)·다보탑(국보 20호)을 포함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소한 탑이다. 또 탑지석을 비롯한 자료에서 수리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보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고시 제2020-00호,「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지정,2020년 6월 25일>
1972년 해체 복원 작업에서 나온 자료들이 수마노탑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금·은·동으로 된 부처님 사리 장엄구와 탑의 명칭과 건립 이유, 수리과정을 담은 5개의 탑지석이 발견됐다.
5개 가운데 네 번째 탑지석 내용이다.
“옛날 신라의 선덕여왕 때 우리나라의 대덕(大德)인 자장(慈藏)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에서 천인 (天人)이 만든 문수보살 상 앞에서 7일 동안 정진 수행하여, 꿈속에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이 설법을 해주는 감응을 입었다. 이어서 부처님의 두골(頭骨)과 부처님의 어금니[佛牙] 그리고 사리 100과를 자장 율사에게 전해주며 ‘그대의 나라에 인연이 있는 곳 중에 삼재(三災)가 닿지 않는 명승지가 있을 것이니 그 곳에 탑을 세우고 이것들을 안치하시오.’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가 바다를 건너려고 할 때 당나라 군사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중략…
용왕이 자장율사를 받들어 맞이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 영남의 울산군(蔚山郡) 포구에 내려주었다. 얼마 간의 수마노석과 부처님의 두골과 사리를 대사에게 바쳤다. 대사가 이것들을 이 산으로 맞아들여 천의봉(天倚峯 : 태백산)아래 문수보살이 점지한 삼갈반지(三葛盤地)에 용왕이 바친 수마노석으로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다. 탑 아래쪽에 향화(香火)를 올리는 법당을 하나를 짓고, ‘정암(淨巖)’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한상길,「정선 정암사의 사적기에 대한 고찰」,『정토학연구』 No.36, 2021, p.50>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바다를 건넌(水) 마노석으로 지은 탑’이라는 뜻이 확인된 것이다.
마노는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정 같은 석영광물인데 붉은 마노는 홍옥, 노란 마노는 황옥으로 부르며 장신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마노를 칠보(七寶)가운데 하나로 생각한 옛 사람들은 이걸 지니면 재앙을 예방한다고 해 더욱 선호했다고 한다.
귀한 재질로 지은 탑에 부처님 진신사리라는 귀한 물건을 봉안한 것이다. 탑 1층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나타내는 문짝 모양이 있는데 진신사리를 모셨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뵙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받은 큰스님 자장율사(594-596~653-655).
귀국 후 자장율사는 부처님 진신 사리를 황룡사, 통도사 등에 전달하면서 불법 전파에 큰 공을 세웠고, 모든 승려의 규범을 관장하는 신라 최고의 승관직인 '대국통'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 동북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자장율사. 어느 날 한 승려가 나타나 정암사에서 기다리면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한 늙은 거사가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 ‘자장을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자장을 모시는 사람이 ‘스승 이름을 부른 사람은 못 봤는데 누구기에 이처럼 미친 말을 하는가?’라고 말하자 거사는 ‘네 스승께 알리기나 하거라’고 했다. 그가 들어가 자장에게 알렸으나 자장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아마도 미친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자장을 모시는 사람이 거사를 꾸짖으며 내쫓자 거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자보좌로 변한 강아지를 타고 빛을 내며 사라져 버렸다.
‘아상(我相, 참다운 ‘나’가 있다는 관념에 집착해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혹은 남과 비교해 내가 낫다고 착각하는 병폐)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有我相者焉得見我
자장이 그 말을 듣고는 그제야 깨닫고 빛을 찾아 남쪽 고개에 뛰어 올랐으나 이미 까마득하여 따라가지 못했다. 자장이 그 곳에서 추락해 죽자 석혈 가운데 유골을 모셨다.”
<일연 지음,김원중 옮김,『삼국유사』,민음사,2008,pp.452~453>
그런데 1778년에 나온 『정암사사적』에는 삼국유사가 전하는 내용에 다른 이야기가 더 추가돼 있다고 한다.
“자장은 이때 완전히 입적한 것이 아니고 유체이탈처럼 영혼만 빠져나가서 문수를 따라가며 석 달 뒤에 올 것을 기약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가 와서 육신을 화장하려고 해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한 달 뒤에 한 승려가 와서 강제로 화장했고, 석달 뒤 자장의 영혼이 왔을 때는 육신이 사라진 뒤가 돼 유골만 석혈에 모시게 됐다는 것이다.” <염중섭,「자장의 정암사 창건과 수마노탑에 대한 검토」,『사학연구』,제125호,2017.p.146>
고승대덕의 최후라기엔 너무 비극적이다. 평생 만나고 싶었던 문수보살을 아상 때문에 놓쳤으니 그 후회가 매우 깊었을 것이다.
“다비식이 거행되는 동안 공중에서 자장율사의 소리가 들렸다. ‘아상이 문수보살의 친견을 막았으니 나의 수행이 헛 것이라…내 몸이 이제 티끌이 되었으니 의탁할 곳이 없구나. 너희들은 계에 의존해 생사의 고해를 건너도록 하라’”<출처: 정암사 홈페이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자장율사의 사연을 품고 있는 정암사.
그 곳 적멸궁 앞에는 자장율사가 남긴 지팡이를 의지해 자라난 붉은 몸체의 나무, 주목(朱木)이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의 이름은 자장율사 주장자(拄杖子).
신표로 꽂은 지팡이 나무는 죽어 고사목이 됐고, 썩어서 텅 빈 속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 지금의 주목(朱木)이 됐다. 두 겹의 나무, ‘나무 속의 나무’는 1300년 시간 내내 중생들에게 무언의 깨달음을 주고 있다.
주장자 옆 적멸궁에 걸린 주련 글씨도 자장율사의 못 다한 꿈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으로 爲度衆生故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었으나 方便現涅槃
이에 진실로는 멸도하지 않고 而實不滅度
항상 이곳에 머물며 법을 설하느니라 常住此說法
<출처: 법화경 여래수량품 게송, 정암사 홈페이지> ///T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