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으로 Sep 28. 2024

내 아들을 울리기 싫어 산 구찌로퍼

<상실 후 느끼는 것들>

 엄마 없이 보내는 두 번째 추석이었다. 맘이 허전한데 아들까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니 더욱 외로웠다. 집안이 한없이 적막해 보였다. 명절 한 달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했던 엄마의 들뜬 모습들이 자꾸 떠올라 슬픈 마음만 가득했다. ‘명절’이란 단어를 우주로 뻥 차버리고 싶었다.


 시가에서 일하는 내내 혼자 계실 아빠 생각에 맘도 편치 않았다. 식사하실 때 울지는 않을까. 걱정이 커질수록 언니와 오빠를 향한 미움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종에 사는 언니는 몸이 아파 내려오지 않는다 하고 새언니도 제주도에서 장사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다 했다.  추석아침까지 시가에 있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돌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일이 마무리되자마자 후다닥 친정으로 출발했다.  


  혼자 모든 음식을 준비했다. 행여나 아빠가 엄마의 부재에 슬퍼하실까 봐 상다리 휘어지게 준비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하는 조카가 온다는데 맛있고 따스한 집 밥을 먹이고 싶은 욕심까지 더해졌다. 소고기뭇국, 잡채, 소갈비, 돼지등갈비, 명태 전, 새우튀김 등등. 종류도 많았지만 평소 2인분 음식만 하는 나에게는 5 식구 음식 준비는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요리솜씨가 그리 좋지 못한 나는 손까지 느려 음식 하나 장만하는데도 싱크대가 온통 난리였다. 처음에는 즐겁게 시작한 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불만만 가득했다.

 “그냥 사 먹으면 될걸. 굳이 이렇게 힘들게 해서 먹어야 하나. 내년부터는 그냥 사 먹자.”

 볼멘소리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맛있게 먹는 조카와 오빠를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전쟁 같은 추석을 지낸 후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셔왔다. 연휴의 마지막 날. 온전한 자유의 날이었다. 아침 여덟 시 지나서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아름 답고 맑은 하늘아래 금강은 한없이 푸르렀다. 커피 그라인더에 한 스푼 원두를 갈아 드립 커피 한잔을 내렸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싱싱한 토마토 두 개를 살짝 데쳐 나만의 한 상을 차렸다. 아팠던 관절들이 치유된 듯했다. 역시 마음이 육체를 좌우한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운동하기 좋은 차림을 한 후 남편을 재촉했다. 햇살 좋은 날 집안에만 있기 아쉬워 근처 산행을 갈 요량이었다. 등산화를 꺼내려다 신발장 안쪽에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고가의 구찌로퍼가 보였다. 작년에 ‘나는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살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지른 신발이다.


 엄마가 천국에 가신 지 한 달이 조금 지나 언니와 유품을 정리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빗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들었다 내렸다만 반복했다. 최종적으로 버릴 물건은 라면 박스 하나정도의 양이었다. 유품은 옷장 한 편에 있는 옷 몇 벌, 화장품 두세 가지, 약 봉투, 양말과 속옷, 성경책이 전부였다. 엄마는 미니멀리즘의 달인이었나 보다.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바로 자신이 죽으면 물건들을 모조리 쓰레기장 앞에다 갖다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무 인정머리 없는 행동이라 하셨다. 살아생전 유언이어서 언니와 나는 웬만하면 엄마 옷을 입어볼까 해서 꼼꼼히 체크했다.

 “언니야, 이 옷은 어때? 어울려?”

 “완전 끔찍해. 너 완전 할머니 같아. 10년은 늙어 보이는데.”

 “할머니 옷이니 당연히 할머니 같지. 그래도 운동할 때 막 걸치면 안 될까? 버릴 순 없어.”

 몇 벌을 언니와 돌아가면서 입어봤는데 하나같이 초라했다. 옷다운 옷은 내가 세 달 전에 사준 니트 카디건 한 장뿐.


 엄마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좋아했다. 소녀감성 넘치는 로맨틱한 칼라가 달린 카디건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만지작거렸다. 본인이 입고 싶은 스타일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르니 옷 한 벌을 사는 일은 큰 곤욕이었다. 거기에다 금액까지 따지면 살만한 옷은 더욱 줄어든다. 마음에 드는 옷은 비싸고 저렴한 옷은 마음에 안 들고, 이러다 보니 보통 백화점에 가면 오후 늦은 시간까지 한참을 보내도 옷 한 벌을 건질까 말까 했다.


 이렇게 까다로우니 백화점 직원들도 얼굴을 기억해 엄마가 등장하면 홍해를 가르듯 쫘악 갈라지고 옆으로 사라졌다. 매장에 들어가면 얼굴을 피하기 일쑤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창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년 봄에 큰맘 먹고 혼자 백화점에 갔다. 연 베이지 바탕의 갈색 아가일 무늬가 있는 캐시미어 100프로의 고급스러운 카디건을 사 왔다. 칼라는 없었지만 소녀감성이 듬뿍 담긴 감촉이 부드러운 옷이었다.

 “너무 이쁘다. 참 곱다 고와”

 손으로 계속 만지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왜 진즉에 사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물 듯이 몰려왔다. 아기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


 엄마는 그 옷을 딱 두 번밖에 입지 못했다. 항암주사 맞으러 서울 갈 때와 마지막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갈 때이다.


 걸려있는 카디건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포근한 엄마 향이 났다. 그 흔한 반지, 팔찌 하나 없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라한 흔적들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내가 죄인이 된 듯했고 불효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리하고 일주일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작은 라면박스만 둥둥 떠다녔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내 유품을 잡고 울게 하고 싶지 않아’ 내 흔적을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우리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지’ 하길 원했다.


 이대로는 못 있겠다 싶어 바로 대전 백화점으로 갔다. 아몬드 모양의 앞코를 가진 블랙 가죽 로퍼가 눈에 띄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어찌나 기분이 통쾌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내가 생각하고 싶을 때, 내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생각할 수 있다. 누구도 그걸 불평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구찌 구두를 신었다.” < 소설 ‘1Q84’ 주인공 아오마메의 대사를 패러디했습니다. 원문에서는 찰스주르당 하이힐>

작가의 이전글 엄격했는데 사랑스러워, 이런 정변 어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