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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으로 Sep 03. 2024

엄격했는데 사랑스러워, 이런 정변 어때요?

    점드립 한 잔에 울어버린 아빠

이사하고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았던지 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경황이 없었다. 반짝이는 은빛물결에 시선이 갔다. 만조라서 하늘색으로 가득한 금강은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소소한 행복이 마음을 꽉 채웠다. 간만의 여유에 흥이 나 스피커 볼륨을 키우고 나만의 홈카페로 들어섰다.


 파나마에서 건너 온 사랑스런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는다. 매실 요거트와 캐러멜 팝콘향의 다채로운 커피라는 찬사를 받은 제품이다. 원두가 갈리는 기계음이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게 들린다. 집안 전체에 커피 향이 스멀스멀 퍼지자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마샬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Tony Ann의 피아노 연주곡이 더욱 감성을 자극했다.  


 설렘으로 가득한 날에는 점드립(일본에서 고안된 특별한 커피 추출 방법)이 제격이다. 하얀 종이 필터를 원추형 고노 드리퍼에 끼워 넣고, 리브(드리퍼안쪽 홈과 돌기)에 밀착되도록 촉촉이 적신다. 갈아놓은 원두 30g을 쏟아 붓고 70ml의 물을 중앙 한 지점에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커피의 내부에 스며들어 에센스 성분만 추출한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서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만들어주는 커피라고들 한다.


 나를 위한 커피 한잔을 만들었다. 숨을 죽이고 향을 들이마신다. 팝콘 향과 같은 달짝지근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시큼한 맛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창가로 다가가 집 근처의 건물 하나하나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우리 집 근처에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차로 스쳐지나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새롭다. 모든 것들이 작게 보이자 내 근심 걱정도 덩달아 조그맣게 줄어들었다.


 저만치 있는 빨간 물체에 시선이 멈췄다. 자세히 보니 빨간색 모닝(대한민국 경차)이다.     ‘설마, 이 시간에 아빠 차가 있을 리가 없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 혹시 우리 집 앞에 주차했어?”

 마음속으로 제발제발 아니길 바랐다. 혹여나 폐가 될까 싶어 딸네 집에 올라오지 못하고 근   처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안쓰러운 마음이 휘몰아쳤다.

 “어떻게 알았어?”

 아빠는 멋쩍은 목소리로 허허 웃는다.

 “우리 집에서 다 보여. 도대체 거기서 뭐하는 거여. 왔으면 올라오지 않고”

 “귀찮게 하면 안 되지. 지나가다 잠깐 들른 거야. 기도만 하고 갈게”


  50년 가까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교장으로 퇴임한 아빠는 고집이 세고 체면을 엄청 중요시했다. 언니가 결혼 일주일 전 파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집안 망신이 된다는 이유였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던 언니는 최근에 이혼했다.


 집에서도 학교 선생님처럼 무서운 분이셨다. 밥 먹는 도중에는 텔레비전을 켜는 걸 용납하지 않았으며 말 하는 것도 금지였다. 눈이 펑펑 내렸던 어느 날 우리 3남매는 식사도중에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돌아가며 킥킥댔다.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내의차림으로 마당에서 한 시간 동안 벌을 섰다.


 당연히 부모님은 시시때때 싸우셨다. 젊었을 때는 엄마가 다 참고 받아주어 집안이 조용한 편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싸움의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두 분 사이에 애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일 년에 싸우지 않는 날은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아이러니한 게 그러면서 두 분은 껌딱지처럼 항상 붙어 다녔다. 아침에 운동할 때도, 쇼핑을 갈 때도, 미용실에 갈 때도. 엄마가 파마를 할 때면 아빠는 항상 차안에서 기다리곤 했다. 우리 3남매에겐 이런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기괴하게 보였다.


 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았던 두 분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부활동산을 간다. 마치 그곳에 가는 게 삶의 유일한 목적인 듯. 문구점을 들락날락하는 초등학생 아이처럼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빠의 이런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완고하고 꽉 막혔던 아빠는 야들야들한 슬라임처럼 포근하고 자상한 분으로 바뀌었다. 항상 입에서는 이쁜 말만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보니 자주 찾아뵙게 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드린다. 가끔은 ‘아빠가 참 머리가 좋은 분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객관적이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시간(크로노스)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 (카이로스). 삶을 크로노스로 채울지 카이로스로 채울지는 순전히 자기 몫이다.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삶에 감사하며 지낸 순간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그리도 간절한 하루를 나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아빠는 지금 카이로스로 꽉꽉 인생을 채우는 중일까.


 그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만들어준다는 점드립 커피를 대접했다. 아이스크림을 먹 듯 홀짝홀짝 잘도 마시는 아빠가 사랑스러웠다.

 “아빠, 맛있어?”

 “우리 딸이 타준 커피인데 엄청 맛나지”

 자글자글 주름진 아빠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빠, 사랑해’

 차마 내뱉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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