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없이 먹는 전투식량 _핫앤쿡 라면애밥

#09. 자취방 혼밥 체험

by 목양부인





멘토의 고시텔에 놀러 갔을 때

웰컴 선물처럼 얼떨결에 받아온 것이 있었다.

아웃도어에서 찬물만 부으면 곧바로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전투식량 즉석요리 파우치다.





입실자들이 시설 이용에 불편함은 없는지

몸소 경험하고자 멘토는 엄동설한에도 집을 두고

고시텔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이 즉석요리도

숙식하는 날 끼니용으로 남겨둔 비상식량일 터.


물론 고시텔은 공용시설로 카페테리아가 있다.

주방 설비와 조리도구, 소스 등이 제공되어

어지간한 요리를 손수 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씻지도 않고 쉬는 날이면 방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자취방에 비상식량이 필요한 이유를 공감해본다.






핫앤쿡 라면애밥 김치찌개





산 정상에서 따뜻하게 호로록호로록 먹으면

정말로 꿀맛일 것 같은 패키지 디자인이다.


실제로 요즘 산에서 뛰어다닌다는 친구에게

혹시 이런 즉석요리도 먹어봤냐고 물었.

그런데,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뭘 해 먹지는 않는다고. 그냥 초코바, 김밥,

오이나 간단한 음료. 아니지, 코로나 시대에는

서로 조심하기 위해 집에서 아예 먹고 간단다.

즉석요리는 어쩌면 인도어도 겨냥한 게 아닐까?





이사를 앞두고 가스레인지를 깨끗하게 닦아서

일찌감치 중고거래 지 미리 잡아둔 나는

집에서 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짐 정리 도중 툭 튀어나온 멘토의 전투식량은

나에게 선물과도 같았으며, 실내에서 먹지 말란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포장을 냉큼 뜯어버렸다.






찬물 부어 바로 먹으라더니 복잡한 조리과정





군 미필자인 나는 전투식량 조리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제일 생소했던 것은 발열체.

경고문이 잔뜩 쓰여있어 사람 쫄리게 한다.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영 간단하지 않아진 것.



__________


1. 외포장지를 개봉하여 내용물을 모두 꺼내고

2. 밥 봉지를 개봉하여 내용물 위에 소스를 넣고

지정선까지 찬물을 부은 후 파우치를 잘 닫고

3. 발열체 봉투를 뜯어 포장지 안쪽 바닥에 놓고

찬물을 또 부어서 포장지 지퍼를 닫으란다.




흡사 계란찜을 중탕하는 조리법 같아 보인다.

이제 10분만 딱 기다리면

펄펄 끓는 라면밥이 완성된다는데...









심상치가 않다. 포장지가 성난 것 마냥 격하게

흔들리며 보글보글 끓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나는 멘토에게 급히 동영상을 공유했다.

혹시 폭발하는 건 아니냐고 재차 확인을 받았다.


이럴 줄 알았음 베란다나 건물 밖에서 해볼 걸

괜히 거실에서 뜯었나, 폭발하면 어떡하지,

이사 직전 집주인에게 배상할 일이 생기려나,

다 됐다고 저걸 손으로 벌려 먹을 수나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분명 지퍼를 아주 잘 닫았는데 몇 분 안돼서

밥솥마냥 뜨거운 김이 펄펄 새어 나왔으므로.








심지어는, 밥을 다 먹은 후 30분이 지나도록,

아니, 두 시간이 넘어도 계속 김을 뿜고 있는

발열체의 성실함이란...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걸 의미하겠지?

더는 반응할 물이 남아있지 않자, 발열체는

드디어 열기를 멈추고 잠잠해졌다.


멘토는 태평웰빙텔 가족분들께

원하시면 나눠드리겠다고 했지만

개인룸 안에서 먹기에는 위험해보인다.

발열체 연기가 두 시간 넘게 방안을

가득 채울 테니까... 카페테리아나

옥상에서 드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