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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Apr 08. 2020

석양에게 용서를 구하다

차창에 걸린 석양

혁명처럼 우리를 덮치고

나는 또

국기하강식을 만난 학생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섰다.


붉은 햇귀는

아주 천천히 내 가슴을 찌르고

도려낸 자리에

어둠을 닮은 눈물을 심어 놓았다.


내 삶에 용서를 구해야 할

시간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기억해내야 할

시간 같기도 한

석양과  나 사이의

어색한 침묵


아내는 불쑥

앓아눕고

아이들은 때늦은

소풍을 떠난다

차 안 까지 따라와

유년을 되새김질하는

석양의 음습한

검문


할아버지의 장례차는

진창에 빠졌다.

움푹 파인 바퀴 자국엔

국화 꽃잎이 짓이겨지고

소풍 간 아이들의

머리 위로 폭우가 내린다.

교회 마룻바닥이 삐그덕 거리고

어머니의 낮은 흐느낌은

내 머리맡에서 삐그덕 거린다

어느새 아내는 돌아 앉아

이삿짐을 꾸린다.


용서받기에도 짧은 시간

어둠은 석양을 밀어낸다


젖은 머리를 말리는 아이들 뒤로

국기 하강식은 끝이 나고

일제히 아이들이 움직인다

장례차가 움직인다

덜컹덜컹

차창 밖 풍경이 움직인다.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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