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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Summer Dec 08. 2023

린쌤이 유서를 쓰라고 했다

 

출처: Pixabay


린쌤이 유서를 썼냐고 물었다.           

유서를 쓰겠다고 하고 일 년이 흘렀다.  

    

추석에 가지 못한 어뎅이를 다녀왔다. 남편은 계속 마음에 걸려했고 이상하게 나도 아들도 마음에 걸렸다. 날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아버님과 일곱째, 막내 작은아버지가 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올라갔다. 올해로 17년이네. 무덤 옆이 푹 팼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어김없이 다녀갔군. 턱턱 턱턱 남편이 장갑 긴 손으로 패인 흙을 고정시킨다.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서 절하고 기도하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다. 이번엔 관속에 누워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왜 뵌 적이 없는 분들의 무덤 앞에 서있을까 의문이 들다가 기도를 했다. 무덤은 왜 존재하는 걸까. 누구를 위한 무덤인 걸까.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과연 고라니와 멧돼지가 정기적으로 와서 무자비하게 옆구리를 파낼 때 불편하시겠지. 아니면 이것도 또한 손주들의 상상인 건가. 우리는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무덤은 살아있는 우리가 의지하는 공간이겠지.  



“납골당도 싫고, 장미공원도 싫어. 그냥 화장해서 바닷가에 뿌려줘. 이왕이면 뉴욕 허드슨강 어때. 아니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다 뿌려줘. 관광지니까 외롭지 않게 말이야. 무덤도, 납골당도, 장미공원도 너무 쓸쓸해. 랜덤한 관광객들의 기운을 느낄래. 그렇게 왔다가 가는 사람들. 들뜬 에너지들, 서로 사랑을 얘기하는 공간과 기운.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할 거야. 엄마가 생각나면 뉴욕에 오렴. 평소에 칼로리 때문에 못 먹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블루베리 베이글과 속 쓰려서 못 먹던 진한 아메리카노를 대신해서 먹어주렴.”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했으니, 엄마의 장기들이(부정맥 심장과 요실금 방광은 제외)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쓰일 수 있게 도와줘. 100ml 조말론 그레잎프룻 향수가 반 이상 남아있으니 가는 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려주렴. 눈썹은 안 그리면 모나리자라 파우더로 유분기를 잡은 후에 갈매기 눈썹으로 그려줘. 입술은 지난번에 사놓은 핑크색 립스틱으로 부탁해. 한 달 전에 찍어놓은 일본여행 영상과 사진 편집해서 저장해 줄래? 그 영상을 생일에 틀어줘. 그리고 한 가지 더. 미사에 엄마이름 봉헌해 주고 기도해 줘. 기일보다는 생일에 기억해 주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엄마 이름으로 한 끼 100원 나눔에 기부해 줄래. 아 마지막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시를 낭독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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