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재비 아빠가 만난 행복씨앗
얼마 전에 초등학생 딸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를 가져왔습니다. 제목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물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딸이 12살이니 태어난 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시간도 제법 지났지만 그간 이사만 5번을 해서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물건이 많지는 않습니다. 조금 생각해보니 딸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 집에 있던 물건 중에 장롱과 육아 일기장이 생각났습니다. 장롱과 육아 일기장은 우리 아이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보물들이었거든요. 딸에게 장롱과 육아 일기장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 아이들을 임신하고 만났던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돌아봤습니다.
우리는 결혼한 지 8개월쯤 뒤인 2007년 2월 딸의 임신을 알게 됐습니다. 예비엄마들은 본인들의 몸의 변화를 금방 감지한다고 하더군요. 아내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9개월 뒤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본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게 ‘설렘’이라는 기쁨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며 처음 준비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부부는 배속에 있는 아이를 두근대는 마음으로 부를 태명을 첫 번째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첫째의 태명은 '행복', 둘째의 태명은 '비단'이었습니다. 첫째의 태명은 왜 '행복'인지 누구나 알만하지만 둘째의 '비단'은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둘째를 가질 때쯤 어는 날 큰처남이 산소에서 비단뱀을 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처남댁은 임신을 하지 않았고 아내는 얼마 후 임신을 하여 우리는 그 꿈을 태몽이라 여기고 꿈을 샀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태명을 '비단'으로 지었습니다. 태몽은 비단뱀이지만 우리는 ‘비단처럼 곱고 귀한’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행복아", "비단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떤 모습일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부모인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 생각도 많이 했고 기대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고 나면 일주일 동안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궐 같은 집을 산다, 드림카를 산다, 세계 일주를 한다, 회사를 관둔다.'같은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 온갖 꿈을 펼치잖아요.
우리는 아이를 가졌을 때 로또를 샀을 때처럼 온갖 꿈을 펼쳤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라 박지성 선수 같은 축구 선수가 될까,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될까?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영화감독이 될까,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가 될까?"
아내와 이야기도 많이 했었지요. 정말 부모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로또를 샀을 때와 아이를 가졌을 때 완전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로또는 대부분 꽝이지만 아이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엄마 아빠의 미니미로 ‘짠’하며 나타납니다.
행복한 상상을 하는 동안 아이는 조금씩 자랐고 어느 날부터 아내의 뱃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엄마 뱃속에서 꿈틀대다니요. 이때부터 우리는 다른 부모들처럼 본격적으로 태교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평생 먹어보지 못한 보약을 먹기도 했었지요. 음악을 듣는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재미있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동화를 보는 즐거움, 이 모든 것이 아이를 기다리는 즐거운 방법이었습니다.
예비 부모들은 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늘 궁금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봅니다. 우리도 뱃속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초음파로 아이를 봤습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처음 초음파로 아이를 봤을 때는 의사 선생님이 가르쳐줘야 아이의 머리, 몸통, 팔, 다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뚜렷하게 아이가 보였습니다. 손을 빠는 모습, 웅크린 자세로 움직이는 모습, 심장 뛰는 소리는 또 어찌나 크게 들리던 지요. 이때는 하루빨리 아이가 태어나 내 품에 안겼으면 하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 날을 디데이로 정하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지요. 마치 결혼과 신혼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쯤 만삭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 또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의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결혼 앨범 사진을 찍는 것처럼 예쁜 차림을 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세트장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만삭 사진은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갈 법도 한데 여전히 계속되는 이유는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부모로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삭 사진을 찍으면서 무거워진 몸으로도 항상 웃고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태어날 아이가 자라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감사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지요.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내가 배를 받치고 만삭 사진을 찍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쯤 앞둔 상황에서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했습니다. 아이의 장롱, 유모차, 카시트, 옷가지, 기저귀 같은 아기용품을 샀지요. 쇼핑은 아빠보다 엄마가 더 즐겁습니다. 남자들은 쇼핑을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저는 쇼핑을 좋아하는 남자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빠로서 아이의 물건을 사는 것이니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요. 그래서 한 달 내도록 쇼핑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옷을 담을 장롱은 어떤 것이 좋을지, 카시트는 어떤 것이 안전할지, 유모차는 어떤 것이 편안할지, 우리 아이에게 어울리는 예쁜 옷은 무엇일지, 늘 즐겁고 행복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샀던 물건 중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장롱입니다. 그런데 그 장롱은 지금까지 우리가 샀던 장롱 중에 제일 튼튼합니다. 우리는 늙어도 꼭 갖고 다닐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좋은 추억이 되니까요.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물건들이 집에 여기저기 제법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롱 두 칸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해야겠습니다. 하나는 딸의 추억, 하나는 아들의 추억을 위해서 말이지요.
드디어 첫 미니미를 만나는 날이 됐습니다. 하루 종일 긴장되는 날이었습니다. 24시간 내에 미니미를 만난다는 설렘과 건강하게 태어나야 된다는 바람 등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절정은 아내가 분만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이후부터였지요. 아내의 보호자였던 제가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러다 아내가 죽겠다.’
아내가 수술하고 있는 동안 밖에 있던 저는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앉았다 일어서기, 앉아서 다리를 떨다가 시계 보기, 일어서서 병원 문 앞을 서성이기, 정말 드라마에서 수술실에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재연배우처럼 말이지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행복아, 건강하게 태어나라, 여보 건강해라.’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두근대고 긴장되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지 않아 간호사분이 울고 있는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축하합니다. 공주입니다. 산모,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딸을 안는 순간 가슴 아래에서 뭔가가 울컥하며 올라왔습니다. 몸집은 정말 작았지만 의외로 머리카락은 제법 길고 까만, 세상에 없던 저의 소중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딸의 손가락 발가락부터 보았습니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건강한 아기였습니다. 짧은 만남 후 딸은 제 손을 떠나 신생아실로 갔습니다. 딸이 제 손을 떠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축하를 받으며 아빠가 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만면에 웃음 가득한 채로 말이지요.
‘내가 아빠가 되다니, 드디어 내가 아빠가 됐구나, 아! 내가 아빠구나.’
그냥 나에서 아빠인 나로 새로 출발하는 설렘으로 가득 한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저보다 좀 더 늦게 아이를 봤습니다. 마취를 깨고 난 후에 볼 수 있었으니까요. 딸을 처음 마주한 아내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상상되시나요? 아내도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아내는 병원 침대에 누워 딸을 바라봤습니다. 행복한 얼굴에서 눈물이 살짝 고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눈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때는 저도 막 아빠가 되어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지요.
살아오면서 아이가 태어난 날을 수없이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태어났지만 첫째가 태어났을 때의 감격이 훨씬 크고 기억이 생생합니다. 첫째가 우리를 부모로 만들어줬으니까요. 열 달 동안 행복한 설렘을 주었던 아이는 태어나면서 우리를 아빠로 엄마로 새롭게 살아갈 문을 열어줬습니다.
2016년 공유가 주연을 맡아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부산행>을 기억하시나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형 좀비 영화입니다. 그때 딸과 둘이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딸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왜 주인공이 죽을 때 웃었지?
영화에서 주인공 공유는 좀비에게 물려 자살을 택합니다. 그는 자살하기 직전 갓 태어난 딸을 웃으며 안고 있던 본인의 옛 모습을 회상합니다. 딸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저는 딸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제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서영아, 그때 주인공이 아기를 떠올렸잖아. 주인공은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안았을 때를 회상하며 행복하게 웃었던 거야. 아빠도 서영이가 처음 아빠 품에 안겼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거든."
저는 공유가 주연을 맡은 영화 <부산행>이 무늬만 아버지인 공유가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처음에 돈만 열심히 벌고 아이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면 아빠의 역할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 속에서 눈을 맞추고 함께하고 지켜주는 사랑이 진정한 아빠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지요.
영화가 끝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감독은 왜 주인공이 아기를 안는 장면을 회상하는 모습을 넣었을까요? 딸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남자가 평생 느끼는 감격적인 행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는 것을 감독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떻게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저를 이렇게나 많이 닮았을까요? 싱크로 율이 100%는 안 돼도 90%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주관적이지요. 아이의 외모가 잘나고 못난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닮은 것 자체가 기분 좋았으니까요. 그래서 늘 아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두고 하고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은 이겁니다.
"아빠를 쏙 닮았네, 쏙 뺐어, 씨도둑 못한다는 말이 이 집을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런데 가만 보면 아빠보다 더 낫네."
어쩔 수 없습니다. 고슴도치 아빠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제일 곱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속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엄마 아빠와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도 고슴도치 엄마 아빠로 살아가며 행복을 느낍니다. 그 시작이 아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은 행복씨앗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아이들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행복열매를 줄지는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