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리듬

by 간질간질

수제비는 음악에 잼병이다.

리듬을 타기는커녕 박자를 맞춰 꺼떡거리기도 어렵다.

친구들과 클럽에 가도 수제비는 마네킹이 되었다. 뻣뻣하게 경직된 수제비

흔들거리는 머리 짓과 어깻짓이 그리도 부러웠다.

티 나지 않게 탁자를 두들기는 손가락, 경쾌하게 바닥을 뗐다 붙였다 두들기는 발.

음악이 가득한 공간에 수제비만 돌섬처럼 뻣뻣하다.


긴장을 풀면 될까 술을 마셨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재주 없는 염색체를 가진 생물을 약물로 치료할 순 없더라.


수제비는 유난히 흑인에 호감이 있다.

리듬은 흑인의 반짝이는 피부를 타고 흐른다.

흑인들의 몸짓은, 표정은, 피부는 리듬과 박자와 음정을 그려낸다.

오선지를 만든 것은 백인 일지 몰라도

음악을 그릴 줄 아는 것은 흑인이다.


나이 먹을수록 수제비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나이 듦은 내려가고 있는 것을 아는 때다. 나이 들면 못 오른 정상에서 눈을 떼고 발 밑을 봐야 한다. 계속해서 정상을 쳐다보느라 내리막길에서 구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발을 헛디뎌서, 정신이 팔려서라고 하지만 정확한 진단명은 노욕이다.


수제비는 여전히 리듬을 타는 어깨와 허리를 부러워 하지만 그뿐이다. 수제비의 것이 아니다.

노력해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답이 없는 문제나 답이 정해진 문제는 오래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거나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추석이 가까워 오니 온갖 미디어에서 '추석이다!'라고 알려주려 애쓴다.

사람들이 닥치고 있어도 하늘의 달이 다 알려주더구먼...


하나라도 더 팔고, 하나라도 더 관심을 끌려는 이유인지 몰라도 추석이나 설이 되면 모두가 떠든다. 하나 더 있구나. 크리스마스.

알고 있는데 계속 알려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고맙지 않은 일이다.


수제비가 오늘 글을 쓰는 건 리듬과 박자를 글에 실어보고 싶어서다.

글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리듬이 맞는 글은 수제비를 행복하게 한다.

글자의 크기는 똑같아도 상대성이론의 시간처럼 기분 좋게 늘여지고 당겨진다.


춤추는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 믿는다.

몸이 음악을 타듯, 뇌가 문장을 타고

격렬해져도 호흡은 차분해진다.

기분 좋은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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